<사람들> '바른서식연구회' 만드는 최주천 박사

posted Jul 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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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천 박사

 

"한국통계연감 영문 표기 엉망…시급히 고쳐야"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비가 내린다'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강우'(降雨)일까, '강수'(降水)일까. 또 영문으로는 어떻게 표기할까.

 

기상학사전에는 비(Rain), 눈(Snow), 우박(Hail), 안개(Fog) 등이 내리는 것을 총칭해 강수(Precipitation)라고 나와 있다. 기상청의 기상 적요표에도 강수는 영어로 'Precipitation', 강우는 'Rain'으로 표기돼 있다.

 

그런데 통계청이 발간한 2012년판 한국통계연감에는 한글로 '강수'라 쓰고 괄호 안에 영어로 'Rainy'(119쪽)라고 적었다. 왜 그렇게 적었을까.

 

경북대를 졸업한 뒤 1957년 미국에 유학, 미네소타대에서 농업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조지아주립대 조교수를 거쳐 미 국무부와 농무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최주천(81) 박사는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통계청이 한국 기상청의 바른 영문과 국문 표기를 버리고 일본 통계청이 발간한 연감을 그대로 베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은퇴 후 한국 국적을 회복해 최근 부산에 역이민한 최 박사는 "광복이 됐지만 우리 통계연감은 아직도 틀린 일본식 영어를 비롯해 도표 서식까지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며 "여전히 이 부분만큼은 해방되지 못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미국 농산물시장과 용어 사전에서는 배추를 'Napa Cabbage'로 표시하는데, 우리는 'Chinese Cabbage'(통계연감 302쪽, 705쪽)로 표기하고 있다. 만일 김장용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배추를 수입하겠다고 주문하면 국거리용인 'Chinese Cabbage'를 받는 해프닝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통계연감에 나오는 '도시가스'의 영문 표기를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Natural Gas', 가정용은 'Natural Gas Residential'이라고 표기한다. 그런데 우리는 'Town Gas'(통계연감 473쪽)로 쓰고 있다. 과거 'City Gas'로 쓰다가 고친다는 것이 개악을 하고 말았다.

 

또 '성·연령 계층 및 사인별 사망자 수'(Deaths by sex, age Group and Causes of Death. 152쪽)에서 '성별'을 뜻하는 'Deaths by sex'는 '섹스에 의한 죽음'으로 해석된다. 원래 의미대로 하려면 'Death Rates, by Sex' 또는 쉼표를 찍어 'Death, by Sex'로 표기해야 한다.

 

최 박사는 "통계연감의 잘못된 영어는 수두룩하다"고 질타하면서 "일본 통계청이 사용하는 '일제식 영문 표기'를 하루빨리 뜯어고치고 미국 정부와 학계, 기업의 간행물 등 100년 이상 쌓아온 국제표준에 맞는 영문 표기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계연감에는 영문 표기뿐만 아니라 도표 서식도 일본 통계연감이 그려놓은 것을 그대로 베껴 엉망이라고 혀를 찬다.

 

"우리 통계표는 아직도 일본이 만들어놓은 것을 그대로 쓰고 있어요. 케케묵은 것이죠. 모든 통계자료, 통계표 등을 독자가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현대식으로 바꾸면 통계연감의 분량을 반으로 줄일 수 있어요. 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데 왜 바꾸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최 박사가 통계연감에 표기된 영어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968년. 조지아주립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그는 미국 국무부 원조처(USAID) 지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원조 책임을 맡은 서울 주재 USAID 사무소는 문서와 서식이 형편없다며 이를 바로잡고 공무원과 교수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는 "그 후로 45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일부 잘못을 개선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치지 않고 있다"면서 "이 틀린 영어를 학계와 언론이 재탕하고 학생과 일반인이 삼탕하는 판"이라고 개탄했다.

 

경성대, 서울대, 고려대 등 강단에 서기도 했던 최 박사는 '통계 간행물 편집 및 영문 표기에 관한 고찰' 등 30여 편의 논문과 저서를 냈다.

 

"세계에서 영어 못하기로 소문난 민족이 일본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이 사용하는 영어를 그대로 베껴 쓴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한국통계연감의 잘못된 영문 표기를 시급히 고쳐야 합니다. 이를 바로잡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연감의 잘못을 고치는 데 여생을 바칠 것입니다. 오는 10월께 (가칭)바른서식연구회를 창립하기로 하고 현재 조직을 만들고 있습니다."

ghwa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24 14:5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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