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목사에서 한국 전도사로…이형근 원장

posted Jul 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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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목사에서 한국 전도사로…이형근 원장
늦깎이 목사에서 한국 전도사로…이형근 원장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13년간 꾸준히 러시아 한국학총서를 출간해온 모스크바 삼일문화원의 이형근 원장. 최근 훈민정음 해례본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러시아 학자 콘체비치 레프 라파일로비치의 연구 성과를 묶어 '훈민정음의 세계'를 출간했다. 2013.7.3 wakaru@yna.co.kr

 

러시아 삼일문화원 통해 한국문화·한국학 전파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최근 러시아에서 '훈민정음의 세계'라는 제목의 러시아어 책이 출간됐다. 외국어 가운데 처음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러시아 학자 콘체비치 레프 라파일로비치의 연구 성과를 묶은 이 책은 2000년 첫선을 보인 '러시아 한국학 총서'의 열 번째 책이다.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13년간 꾸준히 총서를 출간해온 모스크바 삼일문화원의 이형근(74) 원장은 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묶어낼 내용이 많아 욕심 같아선 30권까지 계속 펴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삼일문화원은 1995년 이 원장이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문화 교류와 고려인의 정체성 회복을 돕기 위해 설립한 단체다.

 

중고교 교사를 지내다 뜻한 바가 있어 마흔 넘은 나이에 늦깎이 목사가 된 이 원장은 러시아어를 전공했다는 이유로 주위의 권유에 따라 1993년 선교를 하러 러시아에 가게 됐고 2년 뒤 삼일문화원을 설립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러시아에 한국과 관련된 자료는 많았는데 모두 흩어져 있어서 학생이나 연구자들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정리하자는 생각이었죠. 한국과 러시아가 의외로 서로 잘 모르는 것 같아 양국의 교류도 넓히고 싶었고요."

목사 신분으로 가서 교회도 4곳이나 세웠지만 삼일문화원을 통해서는 종교를 떠나 학술·문화 교류에 힘을 쏟았다.

 

국제교류재단이나 대산문화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한국학 학술서를 여러 권 펴냈고 김소월의 '진달래꽃', 최인훈의 '광장' 같은 문학작품도 번역, 출간했다.

 

한인 이주사나 한국의 역사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여러 차례 개최했으며 지난해 '한민족의 영웅 안중근'이란 제목으로 러시아 전역에서 강의를 펼치는 등 한국 역사, 문학, 사상 등에 대한 강좌도 제공하고 있다.

 

2007년에는 모스크바에서 1천200㎞ 떨어진 볼고그라드에 문화원 산하 세종센터를 열어 러시아 남부에도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전파하고 있다.

 

문화교류 활동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고려인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에 고려인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던 이 원장은 막연하게 고려인에게 한글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고려인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접하면서 이주·정착 지원까지 해주게 됐다.

 

"우리가 그들에게는 빚진 것을 갚는 마음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그들이 150년 전 러시아에 갈 때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쫓기다시피 갔거나 조국의 광복을 위해 갔죠. 스탈린 시대를 거치며 독립운동 후손인 것을 숨길 수밖에 없어서 제대로 유공자 인정도 받지 못했고요. 고려인들을 만나서도 항상 그 점에 자긍심을 가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올해로 러시아로 간 지 꼭 20년을 채우는 이 원장은 건강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지난해부터는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졌다. 문화원 일을 맡아줄 다른 직원이 없는 탓에 몇 번씩 한국과 러시아를 오간다.

 

다행히 고려인 관련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권주영(36·여) 씨가 곧 2∼3년 계획으로 모스크바에 나가 문화원을 맡아주기로 해서 든든하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말하는 이 원장은 "일을 더 벌이면 우리 아들한테 혼날 것"이라고 웃으면서도 "러시아 남부에 한국어를 보급하는 일을 좀더 깊이 있게 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mihye@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03 11:4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