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계획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한국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이 전달되고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은 기본적으로 개발도상국에서의 자금 회수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한국의 주식·채권·외환시장이 큰 폭으로 출렁이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외화자금 조달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문제는 금융시장의 일대 혼란이 실물경제로 전이될지 여부다. 금융시장 불안이 소비 심리 위축으로 연결될 수 있고 시장금리 상승이 기업과 가계의 자금부담으로 이어질지가 변수다.
경기 회복 진행 정도가 각기 다른 상황에서 미국이 무리한 출구전략을 감행, 전세계 경기가 급랭하면 한국 경제의 주요 엔진인 수출에 비상등이 들어올 수도 있다.
◇ 실물경제로 전이되나
미국의 출구전략 이행, 일본 아베노믹스의 위기 등 주요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대한 불확실성 리스크는 국내 금융시장을 일대 혼란으로 밀어 넣고 있다.
코스피는 이달 들어서만 2,000선에서 21일 1,822.83까지 가파르게 내렸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순매도한 금액만 해도 5조원을 넘어섰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약 11개월만에 연 3.04%를 나타냈고 원·달러 환율도 지난달말 달러당 1,129.70원에서 21일 1,154.70원까지 급속하게 올라섰다.
다만 선진국 양적완화에 대한 리스크는 현재로선 금융시장 혼란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실물 경제로 전이 가능성을 예단하기는 이른 시점이라는 의미다.
다만 전 세계 금융시장이 급변동하면서 외화자금 조달에도 비상등이 들어오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최근 호주 금융시장에서 3억달러 이상의 '캥거루 본드'를 발행하려고 했으나, 이를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정부도 1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검토했으나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에 아직 시기를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 역시 외화자금 조달 시기를 일단 미루는 분위기다.
채권 가격 하락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이 기업과 가계의 자금부담 심화로 이어질지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가뜩이나 취약한 가계 부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 불안이 통상 일으키는 소비 심리 위축도 내수 경기 악화 요인이 될 수 있어 우려되는 부분이다.
특히 미국이 무리한 출구전략이 전 세계 경기 악화로 연결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동안 재정난에 빠진 유로존을 대신해 수출 버팀목 역할을 하던 아시아 등 신흥시장의 경기가 위축하면 한국의 상품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 손묶인 정부…시장 상황 예의주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경제동향간담회에서 "미국의 양적완화·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한 한국의 대처 방법을 물을 때 정답은 '이를 한 나라가 막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라며 "국제적 공조로 막아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시사하는 부분이 많다.
정부 당국 관계자들은 전반적으로 미국와 일본의 양적완화 때문에 불거진 리스크 문제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이 "환율이 급변동하고 주식 값이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지만 아직은 정부의 예상범위이므로 정부가 나설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된다"거나 "외환보유고가 3천억달러를 넘고 올해 경상수지 흑자만도 수백달러에 이르므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과거와 같이 썰물같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고 단언하는 것이 바로 그런 모습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딱히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를 한국 뜻대로 결정할 수 없고 시장의 방향성을 예단하기도 이른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선물환포지션 한도 규제·외환건전성 부담금 부과·외국인채권투자자금 비과세 등 이른바 3종 세트를 조정했다가 시장의 방향성이 바뀌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외환시장 역시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 이상의 조치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필요시 즉시 대응"…국제사회 공조 나설 듯
다만 현 상황을 정부가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미얀마 경제협력 공동위원회를 마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입국 즉시 정부 서울청사로 달려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비해 상황별 대응계획에 따라 필요시 즉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점을 눈여겨볼 부분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이 23일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정부는 기존에 마련한 상황별 시나리오 계획에 따라 시장에 대한 모니터링 강도를 높이고 이에 상응하는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양적완화에 대한 문제인 만큼 가장 중요한 해결 방안은 국제사회의 공조를 끌어내는 부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내달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세계금융시장 변동성 완화를 위해 신흥경제국의 입장을 반영하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성태 연구위원은 "거시경제금융회의는 회의 자체로 정부가 상황을 긴급하게 보고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는 것"이라면서 "다만 현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개입에 나설 필요성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23 06: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