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가톨릭 주교반열 오른 '울릉도 소년'

posted Jun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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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가톨릭 주교반열 오른 박현동 아빠스
40대에 가톨릭 주교반열 오른 박현동 아빠스
(왜관=연합뉴스) 40대에 가톨릭 주교 반열에 오른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2013.6.20. << 문화부 기사 참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제공 >> photo@yna.co.kr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 "일하고 기도하면서 세상 위한 공동체 지향"

 

(왜관=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20일 제5대 수도원장의 축복식 미사가 열린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새 수도원장인 자리에 앉은 사람은 고령의 신부가 아니라 젊은 박현동(43·세례명 블라시오) '아빠스'였다.

 

'영적 아버지', '영적 스승'이란 뜻의 '아빠스'(Abbas)는 베네딕도회를 비롯한 특정 수도회에 속한 자치 수도원의 원장으로, 천주교회의 상급 장상(長上·어른)이다.

 

왜관수도원 원장이 북한 덕원자치수도원구의 자치구장직을 겸하게 돼 있어 박 아빠스는 교회법상 교구장 주교들과 동등한 자격을 갖게 됐다.

현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회원은 대주교 3명, 주교 19명에 박 아빠스까지 23명뿐이다. 박 아빠스는 40대에 천주교 최고위급에 오른 셈이다.

 

그는 섬 소년이었다. 울릉도에서 나고 중학교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어렸을 땐 수도원에 들어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축복미사 하루 전인 19일 박 아빠스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원래 꿈은 과학자였어요. 집에 있는 전기제품은 죄다 분해하고 전기가 나가도 제가 고쳤죠. 중학교 때 8비트짜리 컴퓨터를 샀어요. 울릉도 서점에 컴퓨터 관련 책 2권을 갖다 놓는데 제가 한 권 사면 나머지 한 권은 반품이었죠."

대학도 자연스럽게 공대(경북대 응용화학과)로 진학했다.

40대에 가톨릭 주교반열 오른 박현동 아빠스
40대에 가톨릭 주교반열 오른 박현동 아빠스
(왜관=연합뉴스) 40대에 가톨릭 주교 반열에 오른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수도원에서 생산하는 독일식 소시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2013.6.20. << 문화부 기사 참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제공 >> photo@yna.co.kr

 

 

1∼2학년 때는 아마추어 무선통신(HAM)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고, 학교 전산실에서 수시로 밤을 샐 정도로 새로운 분야를 좋아했다.

"무선통신을 하다보면 수많은 잡음과 소음 속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알아들으려 노력하거든요. 돌이켜보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그토록 애썼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 2학년 무렵 가졌던 수도원 생활에 대한 생각은 3학년 때 소명이라는 확신으로 굳어졌다.

대학 시절 한 여학생에게서 "한 집에 한 사람만 군대가면 된다더라. 내가 여군 갈 테니 넌 안 가도 된다"는 고백까지 받았지만 수도원에 들어오고 나서야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렇게 시작한 수도자의 생활은 고되긴 했지만 행복했다. 베네딕도회는 기도와 노동, 성경독서를 수행의 세 축으로 삼아 공동체 생활을 한다.

1992년 수도원에 처음 들어와 유기농 벼농사를 시작했다. 처음 발을 딛는 논에 온종일 살면서 잡초를 뽑았다. 나이 많은 선배 수사들과 함께 땀 흘리면서 노동의 가치를 배웠다.

 

새로움을 좋아하는 기질은 수도원에서도 숨길 수 없었다.

1996년 수도원 견학 행사 때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봉쇄구역의 사진을 웹 기반으로 찍어서 프로젝터로 보여준 것을 계기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국내 가톨릭단체 중 최초의 일이었다.

 

"서버를 빌리러 대구가톨릭대 전산실에 갔는데, 그곳에서 학교 홈페이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던 분들이 검은옷의 수도사가 찾아와 서버를 빌려 달라니 깜짝 놀라시더라구요."

지금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바깥 세상과의 소통을 쉬지 않는다.

40대에 가톨릭 주교반열 오른 박현동 아빠스
40대에 가톨릭 주교반열 오른 박현동 아빠스
(왜관=연합뉴스) 40대에 가톨릭 주교 반열에 오른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가 20일 축복예식을 마치며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3.6.20. << 문화부 기사 참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제공 >> photo@yna.co.kr
 
수도원의 '젊은 피'인 그에게 아빠스의 자리는 사뭇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서 지금 왜 저를 부르셨는지는 너무나 큰 질문이어서 계속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빠스 직무를 어떻게 하면 잘 해 나갈지 선배님들의 조언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박 아빠스는 수도원 운영과 함께 북한과 해외교회 지원에 힘쓰는 한편, 세상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아픔을 치유하는 데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그는 "수사님들이 땀 흘려 일하기에 수익은 나지만 무료 양로원과 노인마을, 외국인노동자센터 등 여러 사업을 하다 보니 감당이 안 된다. 국내외 은인들의 도움으로 큰 살림이 그럭저럭 굴러간다"고 했다.

 

1909년 한국천주교의 첫 남자 수도단체로 설립된 왜관수도원에는 예속수도원과 분원을 합쳐 140명의 수도자가 있다. 순심교육재단과 분도출판사와 분도식품, 금속공예실, 유리화공예실, 노인마을, 농장 등을 운영한다.

왜관수도원은 1949년 북한의 성 베넥딕도 덕원수도원이 폐쇄되면서 희생된 독일인 수도자들과 한국인 신부, 수녀 등 38명의 시복(성인 전 단계인 '복자'로 추대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또 15년 전부터 국제가톨릭의료봉사회와 함께 나진·선봉 지역에 병원을 짓고 있으며, 현재 2차 확장 공사가 거의 마무리됐다.

신임 아빠스의 눈에는 '위기'란 말이 끊이지 않는 최근 종교 상황이 어떻게 비칠까.

 

"요즘은 신을 찾지 않아도 큰 어려움 없이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행복, 성공을 지나치게 생각하다보니 종교가 있을 자리가 없는 거죠. 종교의 위기는 내가 필요할 때만 찾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박 아빠스는 현대인들의 바쁜 생활에 대해서도 "어디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느낌인데 어떤 때는 목적지도 모른 채 달려가는 것 같다. 중간 중간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고 또 멈추고 이런 단순한 리듬에 몸과 마음이 익숙해질 때 정말 큰 힘이 나온다"고 했다.

 

박 아빠스는 수도생활 체험학교를 확대하겠다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베네딕도 성인은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처럼 맞으라고 하셨습니다. 수도원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환대하려고 늘 노력하겠습니다."

ko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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