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검찰이 '정윤회 문건'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한 조응천(52)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사전구속영장 기각은 당초 속전속결로 이 사건 수사를 끝내려 했던 검찰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 전 비서관은
이번 사태에서 청와대와 가장 첨예한 대립을 빚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정윤회(59)씨의 비선실세 의혹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강변했지만, 조 전 비서관은 "문건의
신빙성은 6할 이상"이라는 주장을 고수해 왔다.
검찰이 조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기재한 혐의는 지난해 중반부터 올해 1월까지 청와대 보고서 17건을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박관천(48ㆍ구속) 경정
등을 통해 박지만(56) EG 회장 측근인 전모씨에게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정윤회 문건'도 여기 포함돼 있다. '박 경정→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최모ㆍ한모 경위→언론사' 외에 박 회장을 종착점으로 하는 '제2의 유출 경로'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특히 정윤회 문건이 작성된 직후인 올해 1월 말
조 전 비서관과 박 회장이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만났고, 박 경정과 전씨도 배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정씨의 비선실세 의혹을 캐려 했던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오히려 현직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 회장에게 수시로 '비선보고'를 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다. 이대로라면 문건 작성자(박
경정)와 책임자(조 전 비서관)가 모두 청와대 문서들을 외부로 빼돌렸던 '유출범'이라는 말이다.
조 전 비서관의 이러한 행위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게 검찰의 해석이다. 자신과 갈등관계에
있던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 비서관)을 견제 또는 제거하기 위해 이들의 배후로 여겨지는 정씨의 국정개입설을 퍼뜨리는
한편, 박 회장을 자신의 우군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업무 마찰이 권력 다툼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조 전 비서관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검찰의 '그림'은 조
전 비서관의 영장이 기각되면서 상당 부분 허물어져 버렸다. 심지어 법원은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에 직격탄을
날렸다. 사실상 혐의 입증이 덜 된 상태에서 영장을 청구했다는 뜻으로, 검찰한테는 뼈아픈 대목이다. 조 전 비서관 구속에 실패했다고 해서
"정윤회 문건 내용은 허위이며, 이번 사건은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의 합작품"이라는 수사결론이 바뀔 리는 없지만, 검찰로선 향후 재판과정에서도
혐의 입증에 부담감을 갖게 됐다.
30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조 전 비서관은 혐의를 강력 부인했다. 그는 "박 회장 측에 건넨
문건은 대통령기록물인 청와대 문서가 아니라 쪽지 6건 정도"라며 "박 회장 부부에게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
차원이었으며, 대통령 친인척 관리 업무의 일환"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가 끝날 무렵에는 검찰을 향해 "조사를 해 보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한편, 최후진술 땐 울음도 터뜨리는 등 억울함을 호소했다.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청사를 빠져나오면서 그는 "오늘은 드릴 말씀이 없다. 많이
피곤하다"고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