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여행가방 속 할머니 시신' 사건을 신고 받은 112 상황실이 사체를 인형 모양의 성인용품으로 오인해 수사가 지연된 것으로 확인됐다. 112의 잘못된 판단으로 경찰 출동은 1시간 지연됐고, 신고 학생들도 1시간 동안 잔인하게 살해된 사체와 함께 방치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31일 인천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A(17)군 등 고교생 2명이 인천 남동구 간석동의 한 빌라 앞을 지나다 피해자 전모(71·여)씨가 숨진 채 여행용 가방에 담겨 있는 것을 보고 112에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 학생들이 "여행용 가방이 조금 열려 있다. 사람 엉덩이 같기도 하고 사람
모형의 인형인 것 같기도 하다"며 112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당시
신고 내용을 볼 때 '코드(CODE)1'으로 분류되는 변사 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112는 분실물 습득인 '코드2'로 처리했다.
112는 접수한 사건을 배당할 때 처리의 우선 순위를 정하기 위해 '코드'를
분류하며, 뒤에 작은 숫자가 붙을수록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다. 112의
오판은 경찰의 출동을 1시간 지연시켰다.
22일 오후 3시7분
신고를 접수한 112는 '코드2'를 붙여 사건을 간석4파출소에 배당했지만, '코드1' 사건이 같은 시간대 연이어 발생하면서 우선 순위에
밀려났다. 다른 두 사건을 처리하고 피해자 전씨의 사체가 버려진 장소에 경찰이
도착한 시각은 같은 날 오후 4시5분. 초동조치가 1시간 동안 지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욱이 신고한 학생들은 머리를 둔기로 맞고 목과 옆구리가 흉기에
찔리는 등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체와 1시간 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당시 신고 전화를 한 A군은 "112에 사람 같아 보이니 빨리 와달라고 말했다. 믿지 않는
눈치였다"며 "경찰이 일찍 안 와 다시 전화했지만,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1시간 동안 기다려야 할 줄 몰랐다. 시체와 함께 있어야 했던 1시간이 많이 당황스러웠다"며
"당시 신고를 분실물로 처리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또
1시간 동안 시신을 지키고 있던 학생들에 대한 후속 조치에도 손을 놓고 있다.
신고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의 경우 이들이 받았을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을 우려해
심리치료를 계획하고 있지만, 경찰은 아직까지 이 같은 조치를 취하거나 대책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신고 학생들의 학교 교사는 "경찰이 학생들을 참혹하게 살해된 시체와 함께 1시간 동안 있도록
방치했지만, 아이들에 대한 조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인권 침해나 마찬가지"라며 "학교 차원에서 심리상담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천경찰청은 신고를 접수 받은 112 상황실의 잘못을
인정했다. 인천청 관계자는 "당시 사건을 접수한 상황실 요원이 사체를
성인용품으로 오인했다. 주관적 판단이었다"며 "이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실 요원들은 전문교육을 받은 뒤 투입된다. 당시 사건을 접수한
요원은 근무 연차도 비교적 많은 사람이었다"면서도 "이달에만 오인신고가 375건에 이른다. 쏟아지는 신고를 접수하기 위해서는 상황실 요원들의
빠른 판단이 있어야 한다. 인력과 장비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