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새해 예산 심사 기한이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왔으나 야당의 의사일정 거부에 따른 국회 파행 운영이 이틀째 이어지면서 정국의 긴장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7일 영유아 무상복지(누리과정) 예산의 국고 지원액 관련 합의를 여당이 파기했다며 의사일정을 이틀째 전면 보이콧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예산안의 정확한 액수를 합의한 적 없다고 반박하면서 야당의 조속한 의사일정 복귀와 예산 심의 재개를 촉구했다.
여야 양측의 견해가 이처럼 팽팽히 맞서면서 '예산 국회'가 사실상 공전함에 따라 졸속 심사에 대한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이에 따라 여야 원내 지도부와 정의화 국회의장은 공식 접촉과 함께 물밑에서 비공식 협상을 이어가는 등 국회 정상화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정 의장은 오전 집무실에서 홍문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새누리당)과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이학재·새정치연합 이춘석 의원을 만나 여야 간 예산안 합의에 실패하더라도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2일 예산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국회선진화법의 예산안 자동 부의 규정에 따라 12월1일 예산안이 본회의로 넘어오면 이를 당일 상정해 토론에 부치겠다는 의미다. 정 의장은 "합의가 안 돼도 나로서는 진작부터 국민과 해온 약속이다. 당연히 헌법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그렇게(시한 내 처리) 할 것"이라며 합의를 종용했다. 정 의장은 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새정치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전화통화를 해 이 같은 뜻을 전했으며, 여야 원내대표들과도 접촉할 예정이다.
새누리당 김재원·새정치연합 안규백 원내 수석 부대표는 이날 낮 오찬을 함께 하면서 여야 양측 간 이견으로 국회 파행의 원인이 된 누리 과정 국고 지원 규모를 조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야당의 담뱃세-법인세 인상 연계 방침을 놓고도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예결위 간사,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 등의 채널에서도 비공식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여야는 또 예산안 심사 기한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 일찌감치 명분 쌓기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특정 항목 예산을 문제 삼은 야당의 의사일정 거부를 해마다 반복돼온 '구태'로 규정하고, 야당이 예산심사에 응하지 않아도 법정 처리 시한을 무조건 준수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인세 (인상) 문제를 담뱃세 인상과 연계시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12월2일 법과 원칙에 따라 반드시 (예산안을) 통과해야 한다. 이는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전날 야당의 의사일정 불참 속에 정의화 의장이 담뱃세 관련법을 포함한 14개의 예산 부수법안 지정을 강행한 것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여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 노력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무조건 12월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것은 입법부 수장으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결정"이라면서 "여야 합의 없는 예산안 강행 처리는 어떤 이유로도 해서는 안 될 명백한 예산안 날치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야당 요구를 관철할 특별한 수단이 없는데다 30일까지 합의에 실패하면 여당의 단독 처리를 저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새정치연합이 공무원연금 개혁,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 국정조사' 등을 주고받기로 일괄 타결하는 '빅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처럼 예산안도 제대로 심의하지 못하는 가운데 법안 심의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린 상황이어서 12월 임시국회 소집은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약 여야가 합의에 실패해 새누리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다면 임시국회가 소집돼도 공전과 파행 운영이 계속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