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골프를 치던 도중 여성 경기보조원(캐디)의 가슴을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한 혐의로 박희태(76) 전 국회의장이 불구속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됐다. 이른바 '3부 요인'을 지낸 이가 성추행 혐의로 재판정에 서기는 처음이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지청장 이정회)은 박 전 의장을 형법의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박 전 의장은 9월11일 오전 10시께 강원 원주의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골프를 치던 중 캐디 ㄱ(23)씨의 가슴과 엉덩이 등을 여러 차례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9월30일 박 전 의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지 두 달여 만이다. 경찰로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그동안 정식 재판과 약식명령(벌금) 등 처분을 놓고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박 전 의장에 대한 추가 소환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박 전 의장은 검찰의 출석 요구를 받았으나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회 원주지청장은 "증거관계가 명확한데다 박 전 의장이 진술서를 제출해 별도의 소환조사는 하지 않았다. 사건 관련 자료와 다른 사건과의 형평성 등도 종합적으로 검토해 불구속 기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경찰은 박 전 의장이 언론의 주목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토요일(9월27일) 새벽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도록 '배려'하고,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할 때도 경찰 수사관의 개인 차량을 제공해 '봐주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박 전 의장은 경찰 조사에서 '라운딩 중 의식하지 못한 채 신체 접촉이 이뤄진 것으로 피해 여성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죄송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고의적으로 성추행을 하진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 전 의장은 "손녀 같고 딸 같아서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한 것이다.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 번 툭 찔렀다는 이런 이야기다"라고 해명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자초하기도 했다. 피해 여성 ㄱ씨는 조사 과정에서 '박 전 의장과 원만히 합의했으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성범죄의 친고죄(피해자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죄) 조항이 폐지돼, 박 전 의장은 피해자의 고소 취소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받게 됐다. 형법의 강제추행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박 전 의장은 법정에 서는 것만은 피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검찰도 고심 끝에 기소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3부 요인 출신일 뿐 아니라 검사를 거쳐 김영삼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옛 식구'이기 때문이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전·현직 검찰 고위직의 성추문 사건은 여럿이 남아 있다. '별장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여성한테서 다시 고소당한 상태다.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이진한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사건도 차일피일 처분이 미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신승남 전 검찰총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골프장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