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한 가정폭력 대응..끝내 피살된 아내
[류재복 대기자]
최근 경기도 안산에서 암매장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은 부부싸움 끝에 남편이 저지른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발표했지만 얘기가 달랐다.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경찰에도 여러 차례 도움을 청했던 여성이었다. 가정폭력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뿌리 뽑으라고 했던 4대 악 중 하나다.
지난 14일, 경기 안산시 한 조경업체 마당 속에서 40대 여성 강 모 씨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은 남편 50살 김 모 씨가 부인 강 씨의 외도를 의심해 말다툼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취재결과 경찰 발표는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 씨의 비극적인 죽음은 10년 넘게 지속돼 온 가정 폭력의 결과였다.
강 씨는 지난달 중순, 남편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전치 12주 진단을 받았다. 신안수(목격자)씨는 "얼굴 쪽을 여러 대 때려서 그 여자 분이 주저앉고, 코뼈는 부러진 것처럼 피는 계속 나고, (우리가) 경찰차랑 구급차까지 불렀다"고 말했다. 남편은 현행범으로 체포됐지만 경찰 조사만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상습적인 가정폭력 혐의가 없었다는 게 경찰이 남편을 풀어준 이유였다.
그런데 다음날 강 씨가 남편을 고소한 내용을 보면, 무려 12년 동안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려 구속수사를 요청한 것으로 돼 있다. 또 살해당하기 전까지 5차례나 112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남편을 조사하면서 이 부분까지 확인하지는 못했다.경찰이 상습적 가정 폭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112 신고 기록만 확인했더라면 부인 강 씨의 참혹한 죽음은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 아들은 "'아버지를 좀 데려갔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경찰이) '이렇게 취했는데 뭔 짓 하겠냐?' 하고 그냥 갔어요. 아무 조치도 안 하고.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데려갈 수 있잖아요? 남자가 몇 명이었는데..." 경찰은 숨진 강 씨에게 남편의 접근 금지를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했지만, 강 씨가 이를 거부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개정법에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 접근 금지 등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하는 긴급 임시조치 조항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가정 폭력에 대한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참극을 부른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