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초반 탐색전을 마친 여야 간 '예산 전쟁'이 이제 본격적인 난타전 국면에 돌입했다. 국회는 16일 오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 조정소위 첫 회의를 열고 각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예결위로 올라온 부처별 예산에 대한 본격적인 '메스' 작업에 들어갔다. 휴일에 예산안 조정소위를 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이달 말일까지인 예결위 심사 기한을 지키겠다는 여야의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올해부터는 예산안이 11월말까지 예결위를 통과하지 못하면 12월1일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기 때문에 여야 모두 마음이 급한 상황이다. 여야는 이날 예산안 조정소위 첫 회의에 앞서 새누리당 8명, 새정치민주연합 7명으로 소위 구성을 완료했다.그러나 실제로 오는 30일까지 예결위 심사가 완료돼 여야 합의안을 만들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무상 보육(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놓고 여야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고, 창조경제 예산, 경제 활성화 관련 예산 등도 여야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쟁점 항목들이다. 특히 야당은 이른바 '박근혜표 예산'으로 규정한 예산 5조 원을 삭감해 복지 예산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어서 여야 간에 큰 충돌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자칫 예결위 심의가 파행 또는 공전한다면 보름가량 남은 기한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새누리당은 시한을 넘기면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의 예산안 자동 부의 규정을 활용해 합의된 항목까지만 적용한 정부 원안을 12월2일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30일까지 일부 항목만 미합의로 남는다면 며칠 더 시간을 달라고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미합의 상태에서 새누리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다면 새정치연합의 강한 반발로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대로 예산안 처리를 시한 이후로 미룬다면 '국회선진화법'도 헌법을 준수하는 데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여 자동 부의 규정은 '양날의 칼'이 될 전망이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이날 예산안 조정소위 소속 의원들과 간담회에서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예산 등을 과감히 삭감하겠다면서 "최소한 5조원 이상을 삭감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증액 재원으로 활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예결특위 야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은 "(예산안의 법정시한내) 정상처리 노력을 다하겠다"면서도 "12월2일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불문율처럼 정해 야당을 협박하고 졸속심사하려고 한다면 야당은 절대 그리 안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야당이 균형감각을 갖고 접근했으면 좋겠다"면서 "지금 경제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경제살리기 측면에서 예산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원내대표는 예산안의 법정시한내 처리 문제에 대해 "안되면 정부안대로 갈(처리할) 것"이라면서 "예산과 법률을 갖고 흥정하는 것은 더 이상 안했으면 좋겠다. 국민이 용납하지도 않고 이제는 통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예산안을 둘러싼 전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번 주부터는 여야가 각자 원하는 중점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신경전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무려 160건에 달하는 주요 법안을 선별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특히 분양가상한제 탄력 적용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관련 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의료법 개정안, 자본시장법, 국가재정법 개정안 등 30여개에 달하는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의 처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 혁신 과제인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 규제·공기업 개혁 법안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야당은 이 같은 경제 관련 법안의 대부분을 '가짜 민생법안'으로 규정하고 저지한다는 방침이어서 정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공무원 연금과 관련해선 시간을 두고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한다는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대신 최저임금 인상, 전·월세 상한제 도입, 간병비 부담 완화, 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과 관련한 법안들을 입법 추진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