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지난 13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정당했다며 '해고 무효'라고 판단했던 2심 판결을 뒤집자,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2심 판결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2월 서울고법 민사2부(재판장 조해현)가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을 때 법원 안팎에서는 재판부의 '소신'에 놀라는 분위기였다.
대법원이 계속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해오던 흐름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 부장판사는 "모두가 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2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의 '해고 무효' 논리는 '정리해고는 근로자에게 귀책사유 없는 근로관계 단절이므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판결문을 검토한 한 판사는 "이 논리는 2심 재판부가 나름의 법리를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2심 재판부는 이를 전제로 ①인원감축 규모에 관해 사용자가 합리성을 증명해야 하고 ②쌍용차 사건의 경우 안진회계법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를 기초로 회사가 인원 삭감 규모를 결정한 것인데 ③감사보고서 중 유형자산의 손상차손이 과다계상되어 있어 ④이 감사보고서에 터잡은 인원삭감 규모는 합리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잉여인력에 대한 판단은 경영 판단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며 뒤집었다. 당시 대법 판결도 해고를 무효로 본 1·2심을 뒤집고 만든 판례다. 노동자를 대리한 금속노조 법률원 김태욱 변호사는 "2심에서는 쌍용차가 구조조정 규모 산정의 구체적 증거를 제출하지 못해 사실 입증이 안 됐다고 본 것인데, 대법원은 회사 쪽 주장을 사실로 인정했다. 법률 적용의 잘잘못만 판단해야 하는 대법원이 사실 인정 문제까지 개입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법부 내에서 하급심 판사들이 대법원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 있게 법리를 펴지 못하는 문제가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 평소 판사들은 "새로운 법리를 만들면 뭐 하나. 어차피 위(대법원)로 가면 다 깨질 건데"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해왔다. 이 때문에 소송 당사자를 설득하려는 판결문이 아니라, 상급심에서 깨지지 않기 위한 판결문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올려 대법관들의 다양한 법리·가치관을 판결문에 남기는 것도 후배 법관들이 적극적으로 법리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번 쌍용차 판결은 법관 4명이 판단하는 소부에서 결정났다.
한 부장판사는 "쌍용차 사건을 왜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 않고 소부에서 판결했는지 의아하다. 예전에는 이런 판결이 보수적으로 결정나더라도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져) 소수의견이 쟁쟁하게 올라가고 주목할 만한 의견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