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실태조사에서 밝혀진 ‘복지 사각’ 피폐한 삶
이혼 후 혼자 두 아들(8세, 10세)을 키우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A씨(33·여)는 최근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친정아버지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연락도 거의 하지 않고 1년에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사이지만 서류 밖의 사정은 참작되지 않았다.
정부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된 A씨 모자는 끝이 어딘지 모를 막다른 곳으로 하루하루 내몰리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양육비도 부정기적으로 부치던 전 남편은 최근 들어 연락마저 닿지 않는다.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경력단절 여성에게 구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난과 배신에 심신이 지쳤고 일을 하더라도 어린 두 아이를 대신 돌봐줄 사람이 없다.
A씨 사례는 우리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여실히 드러낸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연상시킨다. 지난 2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목숨을 끊은 이들 역시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과거 식당에서 일할 때 받은 150만원이 소득으로 잡혔다. 2014년 3인 가구 최저 생계비(132만9118원)보다 높아 기초수급을 받을 수 없었다. A씨를 면담한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그가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것조차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인권위는 13일 A씨 같은 최저생계비 이하 비수급 빈곤층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비수급 빈곤층은 최저생계비보다 적은 돈으로 생활하면서도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2010년 기준 105만명에 달하는 이들의 월평균 1인 소득(51만9000원)은 수급 빈곤층(54만7000원)보다 약 2만8000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수급 빈곤층의 생활 여건이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는 수급 빈곤층보다 열악하다는 얘기다.
청각장애 6급 B씨(70·여)는 오래전 이혼하고 원룸에 혼자 살고 있다. 예전엔 잔디 심는 공공근로를 주로 했지만 지금은 건강이 나빠져 그마저도 힘들어졌다. 최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며 주택 계약서 등 서류를 제출했지만 아직 회신이 없다. 그는 원룸을 동네 노인들에게 화투 장소로 내주거나 지인의 집안일을 도와주고 받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호적에 오르지 않은 딸이 간호사로 일하며 가끔 돈을 보내주는데 이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에서 탈락할까봐 걱정하고 있다.
인권위 조사결과 지난 1년간 비수급 빈곤가구의 36.8%가 돈이 없어 겨울 난방을 하지 못했다. 수급 빈곤가구(25.3%)보다 11.5% 포인트 높은 비율이다. 가스·기름보일러 등 기본적인 난방시설이 없는 집에 사는 비율도 비수급 빈곤층(13.6%)이 수급 빈곤층(7.1%)에 비해 배 가까이 높았다.
경제적 어려움에 지난 1년간 병원에 가지 못한 비율도 비수급 빈곤층(36.8%)이 수급 빈곤층(22.2%)보다 높았다. 비수급 빈곤층의 42.4%는 자녀에게 대학 등 고등교육을 시킬 형편이 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다. 비수급 빈곤층의 85.4%가 물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없다고 답했다. 전체 가구 평균은 18.5%다. 비수급 빈곤층 5명 중 1명(20.2%)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문진영 교수는 "정부 복지정책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비수급 빈곤층의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 그들의 실태가 어떠한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요인을 파악하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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