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동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3일 기준금리 2% 선을 지킨 건 금리인하 약발이 내수진작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안으로는 유동성 함정, 밖으로는 자본유출만 일으킬 것이란 우려가 작용했다. "통화정책만으로는 성장세 회복에 한계가 있다"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기존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앞서 8월과 10월 두 차례 금리를 낮춘 금통위원들은 △가계부채 증가 △자금유출 우려 △미국의 조기 금리 정상화 등 3대 변수 앞에 이번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금통위 결정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통위는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점,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 확대 등으로 금융안정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최근 0.25%포인트씩 두 번에 걸쳐 금리를 내린 만큼 추가 인하가 부담스러운 데다 당분간은 인하효과와 경기흐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날 결정의 주요 변수는 가계부채 증가세와 한·미 간 금리차 축소에 따른 자금유출 우려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0월 은행의 가계대출은 한 달 새 6조9000억원 늘어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게다가 금리를 인하하면 주택매매가 활발해질 것이란 당국의 기대와 달리 은행금리 1% 시대에 대한 불안감으로 전셋값 상승에 월세 전환 현상마저 가세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초이노믹스 첫 타깃이었던 건설경기 활성화는 아직 요원하다. 지표상으로도 설비투자 및 광공업생산지수 상승폭을 낮추는 요인이다.
전통적으로 고금리·성장정책을 지향하는 미국 공화당의 의회 장악으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도 한은이 금리 결정에 신중을 기한 이유다. 현재 한·미 간 금리차는 불과 1.75%포인트다.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 국제 투자자본들이 미국 채권매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자산 재조정에 들어갈 것이며 이 과정에서 신흥국에서 자본유출과 통화정책의 역방향성으로 자금흐름이 취약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총재도 앞서 지난달 금통위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직후 "금리인하가 자본유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달 29일 종료된 3차 양적완화(QE)에서 실업률 제고를 목표로 삼았던 미국은 최근 고용지표에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신규 고용은 2010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49개월 연속 증가세로, 1980년대 말 48개월 기록을 깬 상태다. 이 점이 연준의 금리 정상화를 앞당기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엔저(엔화가치 하락) 방어 차원에서 금리를 인하해 원·달러 환율을 상승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최근 원·엔 동조화 현상이 뚜렷해짐에 따라 다소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주형환 1차관의 '원·엔 동조화'(달러화 대비 엔화가치 하락만큼 원화가치도 동반 하락하는 현상) 발언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고환율 시대에 대한 시장의 기대심리가 형성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장중 달러당 1100원을 찍으며 엔화 약세만큼 원화도 가파르게 약세로 전환되는 모양새다.
이 총재는 "엔의 과도한 약세에 따른 (일본 경제의) 물가상승 문제라든가, 코스트 부담을 감안하면 엔화 약세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언급, 금리인하와 엔저 방어를 연결짓는 문제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다. 석 달 새 13%나 떨어진 엔화에 대응해 금리를 인하했다가는 자칫 채권시장과 증시에서 외국인투자가의 자금이탈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