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수색종료
“마지막 한 분까지 찾아드리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단원고 학생 등 476명을 태우고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된 사람은 172명. 295명이 희생됐다. 그중 9명을 끝내 찾지 못한 채 수색작업은 11일 종료됐다. 세월호가 가라앉던 때부터 이날까지 수많은 부실과 무책임한 행태가 노출됐다. 지난 7개월, 과연 우리는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했으며 뼈아픈 교훈을 가슴에 새겼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갈팡질팡 정부, 증폭된 논란=정부는 사고 직후 민관 합동으로 육·해·공 전방위 수색을 펼쳤으나 거듭된 부실 대응과 혼선으로 생존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탑승객 숫자도 477명에서 459명, 462명, 475명으로 정정을 거듭했고 나흘이 지나서야 476명이란 숫자가 나왔다. 이후에도 명단에 없는 시신이 발견되거나 시신이 뒤바뀌는 경우도 생겼다.
해경은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도 선내 진입에 실패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 경비함에는 선내 진입을 위한 요원도, 장비도 없었다. 해경은 구호 계약을 맺은 민간 잠수업체 ‘언딘’ 잠수사를 먼저 투입하려고 해군과 다른 잠수사를 제지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수색 과정에서 언딘과 다른 업체의 알력 다툼도 불거졌다.
단 한 명이라도…구조에서 수색으로=거듭되는 혼선 속에 생존자 구조작업은 실종자 수색작업으로 전환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해경·해군·소방대원·민간잠수사와 합동구조팀을 꾸렸지만 이번엔 ‘맹골수도’가 문제였다. 간만의 차가 크고 유속이 빨라 구조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탁한 시야 탓에 사흘 만에야 수중 선체로 들어가는 통로를 확보했다. 공기 주입을 시작했지만 강한 조류와 장애물의 방해로 선체 진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했다.
나흘이 지나서야 선체 유리창을 깨고 잠수사들이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10여일간 매일 시신이 발견됐다. 4월 29일까지 200구 넘게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나고 선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수색작업이 수포로 돌아가는 날이 늘었다. 반복된 잠수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두 잠수사의 목숨을 앗아갔다.
수색은 끝났지만 기다림엔 끝이 없다=결국 5월 29일 승객이 가장 많이 잔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4층 선체 일부를 절단했다. 6월 내내 선체 내부에서 시신 3구를 수습했다. 7월 18일 식당칸에서 여성조리사 시신을 수습한 뒤 100여일간 성과가 없자 민간 잠수업체는 철수 입장을 밝혔다.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달 27일 무기명 투표로 수색 지속을 결정했고 이틀 만에 단원고 황지현양의 시신이 수습되면서는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사고 해역의 물살이 거칠어지고 수온도 급격히 떨어지자 가족들은 10일 오후 6시 수색을 종료토록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정부가 11일 수색 종료를 선언하며 수중수색은 마무리됐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가족은 당분간 진도 체육관에 남기로 했다. 이제 구성될 선체인양 민관 협의체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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