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병 모친 "이 나라를 떠날 겁니다"
[류재복 대기자]
"조금은 기대했는데 어떻게 살인이 아닐 수 있나요. 이 나라를 떠날 겁니다." 선임병들에게 폭행당해 숨진 윤모 일병의 어머니 안모(58)씨는 주범 이모 병장에게 징역 45년이 선고되자 자리에 주저앉아 "그러면 누가 죽였어. 누가"라며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윤 일병 아버지도 "살인죄야. 살인"이라고 소리쳤다.
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문성철 준장)에서 30일 오후 열린 선고공판에서 이 병장 등 4명에게 적용됐던 살인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법정에 있던 윤 일병 가족은 오열했다. 재판부는 주범 이 병장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폭행과 가혹행위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사건 당일 피해자가 소변을 흘리고 쓰러진 뒤에도 발로 가슴을 차는 등 충격적일 정도로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죄질에 걸맞은 중형을 선고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방청석에서는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가 터져나왔다. 방청석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윤 일병의 큰누나는 동생의 사진을 가슴에 끌어안고 "이게 무슨 재판이야"라고 고함을 지르며 통곡했다. 윤 일병의 매형은 미리 준비한 모래를 재판장을 향해 뿌리다가 군 헌병들에게 제지당했다. 작은 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법대 쪽으로 돌진하다 헌병들에게 막혔다.
유가족들은 10여분간 항의하다 법정 밖으로 나와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피해자 법률 대리인 박상혁(42) 변호사는 "살인죄 적용이 안 됐지만 상당히 중형은 선고됐다"며 "분명 살인 고의가 있었다. 군 검찰은 항소를 통해 살인죄를 적용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가해자 하모 병장 법률 대리인은 "어떻게 형량에 형평성이 없는지 모르겠다. 주범 이외의 피의자들의 형량이 너무 높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당초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은 오후 2시30분부터 30분간 진행된 공판에는 윤 일병 가족뿐 아니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시민법정감시단 30여명 등 모두 110여명의 방청객이 자리했다. 유족들은 윤 일병 영정사진과 윤 일병 몸의 멍 자국이 담긴 사진을 들고 차분히 재판을 기다렸다.
하지만 가해 병사들이 법정 안으로 들어오자 "살인자! 너희들은 살아 있으니 좋으냐"라고 고함치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차량 두 대를 나눠 타고 군사법원에 도착한 가해 병사들은 공판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재판장이 선고를 할 때도 일어선 채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유족들은 공판에 앞서 '현재 유가족들의 심정'이란 제목의 유인물을 통해 "윤 일병의 부모님은 군복 입은 군인들만 봐도 넋을 잃고 숨이 막혀 쓰러질 정도의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가해자들은 남아 있는 가족의 삶도 영원히 송두리째 파괴해버렸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