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중학생 딸도 유서 남겨
[류재복 대기자]
저소득층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이른바 '송파 세모녀법' 처리가 늦어지는 사이 인천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일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3일 인천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11시 50분께 인천시 남구의 한 빌라에서 A(51)씨, 부인 B(45)씨, 딸 C(12)양이 숨져 있는 것을 C양의 담임교사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일가족 3명은 안방에 반듯이 누운 상태로 숨져 있었으며 현장에서는 타다 남은 연탄, B씨와 C양이 노트에 적은 유서 5장이 발견됐다. B씨는 유서에 마이너스 통장 대출 만기일이 이달 12일로 다가오면서 겪는 심리적인 압박과 비관을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생활고로 힘들다. 혹시라도 우리가 살아서 발견된다면 응급처치는 하지 말고 그냥 떠날 수 있게 해달라. 뒷일은 남편이 해줬으면 한다"고 적었다. C양은 "그동안 아빠 말을 안 들어 죄송하다. 밥 잘 챙기고 건강 유의해라. 나는 엄마하고 있는 게 더 좋다.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할 것이기에 슬프지 않다"고 썼다. 직접 그린 자신의 얼굴과 담임교사의 연락처도 남겼다.
경찰은 유서 내용을 봤을 때 모녀가 목숨을 끊은 뒤 이들을 발견한 A씨가 뒤따라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부검 결과 이들의 사인은 모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나왔다. 일가족은 남구 주안동에 위치한 15평짜리 낡은 빌라 3층 집에서 지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지인과 친척들은 모두 A씨 가족이 원만하고 단란하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어려웠다는 점은 주변에서도 몰랐던 것 같다"고 전했다.
A씨는 서울의 한 폐기물업체에서 근무했으며 B씨는 지난 9월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B씨가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게 된 이유나 A씨 부부의 부채 규모 등은 아직 조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 가족이 정부로부터 생계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부채 규모 등을 파악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아 A씨 부부 계좌를 추적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2월엔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박모(60·여)씨와 30대 두 딸이 생활고를 비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을 찾아 나섰고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이른바 '송파 세모녀법'을 추진했으나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법 시행이 늦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