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소장, 돈주고 사고 팔아
[류재복 대기자]
주택관리사인 40대 A씨는 지난해 9월 경기도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 B씨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관리소장 자리를 줄 테니 1000만원을 빌려달라." 채용을 대가로 한 뒷돈 요구였다. 경제적 여유가 없던 A씨는 간신히 350만원을 구해 건넨 뒤 관리소장 자리를 얻었다.
몇 달 뒤 B씨는 다시 돈을 요구했다. A씨가 "돈이 없다"고 하자 B씨는 "아는 은행원이 있으니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서 달라"고 했다. A씨는 며칠 동안 고민하다 통장을 개설해 450만원을 줬다. 수차례 요구 끝에 간신히 차용증을 받아냈지만 채무자, 채권자도 명확하게 기재되지 않은 것이었다. B씨의 요구를 다 들어줬지만 A씨는 지난 9월 계약 연장에 실패했다. 빌려준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 주택관리사협회 경기도회 김일암 상담위원은 "A씨는 상담을 한 뒤 빌려준 돈은 포기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했다"며 "돈을 주고 취업한 관리소장들은 자신이 피해를 입을까봐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부 아파트 단지의 관리소장 채용을 놓고 현대판 매관매직(賣官賣職)이 일어나고 있다. 주택관리사들 사이에서 '보천사오백(補千士五百)'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관리소장 경력 3년 이하인 주택관리사보는 1000만원, 경력 3년이 넘는 주택관리사는 500만원을 관리업체나 입주자대표에게 줘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택관리사협회 관계자는 "관리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5만여 명인데 일자리는 1만5000개가 안 되 니 취업 비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 관리소장 채용 대가로 뒷돈을 받은 혐의로 주택관리업체 대표 등 3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이들은 주택관리사 김모씨로부터 500만원을 받는 등 49명에게서 1억47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였다.
이런 뒷돈은 관리비 비리로 이어지는 주요인 중 하나다. 두세 달치 월급을 상납한 일부 관리소장은 관리비에 눈독을 들이거나 관리소 직원 채용을 대가로 돈을 받기도 한다. 뒷돈을 주고 들어간 관리소장들은 입주자대표와 관리업체를 제대로 감시하기 어렵다. 경기도 공동주택관리조사단장인 경기대 최용화(건축공학) 교수는 "관리소장은 돈을 회수하기 위해 주민대표들과 짬짜미를 하거나 관리비를 횡령할 가능성이 높다"며 "관리소장 채용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감시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