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중앙선관위가 6일 정치인 출판기념회 개선방안을 마련함에 따라 그동안 불법적인 정치자금
통로로 지목돼온 '일그러진' 출판기념회 문화에 획기적인 개선의 전기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선관위는 6일 전체위원회의를 열고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할 경우 2일 전까지 사전에
신고토록 하고 당일 현장에서는 출판사가 정가로 판매하는 경우 이외에 일체의 금품 모금행위를 금지토록 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출판사는 출판물 수익을, 정치인은 인세를 받게 되는
셈이다.
선관위는 당초 출판기념회의 모금액을 '정치자금'으로
간주해, 현재 연간 1억5천만원이 상한액인 후원금 모금한도에 일정 정도의 출판물 모금액을 포함시켜 사실상 정치자금 모금한도를 높이는 방안도
아울러 검토했다. 대신 출판기념회의 개최 횟수, 신고 여부, 한도액 등에 제한을 둬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격론끝에 선관위는 두번째 방안은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출판기념회 모금액을 정치자금으로 간주할 경우, 현장에서의 공개 모금활동을 인정해야 하며 그렇게
되면 사실상 정치자금 통로를 하나 더 터주게 되는 셈이어서 여러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경우 정치인이 성실신고를 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모금액을 파악하기도 어려워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을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그동안 일각에서는 출판기념회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왔다.
하지만 선관위는 그럴 경우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등 위헌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출판기념회는 허용하되, 출판사가 현장에서 정가로만 책을 판매토록 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택했다는 것.
선관위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출판물 정가 판매가 가혹하다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정치권에서 이미 여야가 혁신위원회를 만들어 사실상 출판기념회를 없애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점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안이 현실화된다면 앞으로
출판기념회장에서 길게 줄을 지어서서 모금함에 '금일봉'을 넣는 관행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출판기념회 개최 시 초선은 1억원, 중진은 2억∼5억원 안팎 등의 수익이 발생한다는
'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출판물 정가 판매가 현실화되면 정치인은 인세수익만 갖게 되므로 더이상 억단위의 고액 모금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선관위는 또 출판사를 통해 출판물의 판매규모를 파악할
수 있으므로 출판물을 통한 정치인의 수익도 어느 정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가 판매만 허용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피감기관 등이 출판물을 다량 구매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등의 '편법'이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어 보인다. 특히
정치인과 특정 출판사가 이면계약이나 부정결탁을 할 경우 '검은 돈의 흐름'을 아예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선관위 관계자도 "한 사람이 책을 여러 권 가져가거나
단체로 구매할 경우 어떻게 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현재도 서점에서 얼마든지 다량구매할 수 있는데 현장에서만 막는 게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일단 정치권에서는 선관위가 내놓은
방안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새누리당 김현숙 원내대변인은 "선관위가
내놓은 방안은 새누리당이 지향하는 방향과 동일한 것으로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고, 새정치연합 한정애 대변인도 "당 혁신실천위에서 이미 출판기념회
폐지까지 검토해온 만큼 이번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이달 중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하더라도 국회 정개특위에서 여야가 합의해야 입법화가 되기 때문에 결국 정치권의 개혁 의지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현역 의원들은 정치자금 상한액이 10년째 1억5천만원으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이런 '미봉책'이 도입되면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금 통로는 여전히 막아두는 것이므로 온갖 편법이 동원될 수 있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선관위는 이 같은 의견을 감안해 추후에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금방안과 정치자금 상한액을 늘리는 방안까지도 논의할 방침이다.선관위 관계자는
"일부에서 정치자금 상한 1억5천만원이 2004년에 정해졌는데 그동안 물가상승을 감안하지 않고 고정돼있었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며 "추후
정치자금 전반에 대해 추가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권의
현실을 계속 무시하고 옥죄기만 하면 또다른 부작용이 생기고 음성적인 금품수수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보다는 투명성을 강화하면서 숨통을 터줘야 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 중에 추가의견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