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청와대는 4일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의 인천아시안게임 폐회식 참석 방한을 계기로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여온 '통일대박론'의 불씨가 되살아나길 조심스럽게 기대하는 분위기다. 최근 다시 긴장국면에 들어섰던 남북관계의 반전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북한의 선제적인 '파격행보'에 따른 것이어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24일 박 대통령이 미국 뉴욕을 방문해 취임 후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남북관계에는 급속히 한랭전선이 드리워졌던 게 사실이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연설 뒤 박 대통령을 실명으로 거칠게 비난했고, 이에 박 대통령이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다시 인권과 핵 문제를 거론하며 대북 압박강도를 높이자 북한이 재차 원색비난에 나섰던 것.
이런 와중에 북한이 이날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필두로 한 고위급대표단을 파견한 것은 '대반전'이라고
할만큼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북한대표팀이 지난 1990년
베이징 대회 이후 최고 성적을 거둔 이번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이유로 들기는 했지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최측근이자 사실상 북한의
권력서열 2위로 부상한 황 정치국장을 파견한 것은 결코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고 정부 관계자는 진단했다.
여기에 군인 신분은 아니지만 국가체육지도위원장으로 민간 분야를 대표하는 실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최룡해 노동당 비서와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까지 최고위급으로 대표단을 꾸렸다. 청와대도 북한의 이례적인 움직임에 '맞춤형' 대응에 나섰다.
우선 이날 회담에서 외교안보 분야 컨트롤타워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을 황 총정치국장의 카운터파트로
내세웠다.지난 2월 열린 1차 남북고위급 접촉 때 수석대표로 활약했던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과 함께 북측 대표단과의 오찬에 나설 정도로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남북문제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류길재 장관이
참석하기는 했지만 남북간 오찬회담의 '수석대표' 격으로 김 실장을 택한 것은 청와대가 중심이 돼서 남북관계의 개선, 더 나아가 박 대통령의
민생·환경·문화협력을 통해 남북간 신뢰를 쌓아나가는 '작은 통일론'의 진전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리 측 대표단이 박 대통령과의 만남을 주선할 용의를
북한 고위대표단에 전한 것도 이번 북한의 대표단 파견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북한의 이번 대표단 파견을 과도하게 해석해 남북관계에 급격한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 문제와 인권 문제 등으로 인해 조성된 외교적 고립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최고위층
인사를 파견하는 '전시성 이벤트' 를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 대표단이
이날 우리 대표단의 박 대통령 예방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