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보통사람으로 한국 땅 밟아
북한이탈주민·이주노동자 등 일반인 32명 교황 영접
교황, 박 대통령 등 영접단과 일일이 악수 나눠
세월호 유족 위로... 예포 21발로 국빈대우
[류재복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이한 사람들은 세월호 침몰사고 유족들과 북한이탈주민, 이주노동자 등 한국 사회의 약자들이었다. 교황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눴고,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는 잠시 멈춰 선 뒤 "가슴 깊이 기억하겠다"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14일 오전 10시30분께 알리탈리아 전세기의 출입문이 열리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출입문에서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와 최종현 외교부 의전장과 인사를 나눈 교황은 계단을 내려와 가장 먼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박 대통령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교황에게 "여행이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요"라고 물은 뒤 "비엔베니도 아 코레아(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교황님을 모시게 돼서 온 국민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며 스페인어 인사를 섞은 환영의 말을 건넸다. 교황은 "네. 저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많은 한국인이 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이번 방한을 계기로 우리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고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새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하자, 교황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다시 "행복하고 뜻깊은 방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스베모스 루에고(이따 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예수회 정제천 신부의 통역으로 박 대통령과 한동안 대화를 나눈 교황은 계성초등학교 최우진(6학년)·최승원(2학년) 남매의 꽃다발을 받은 뒤 이들과도 눈을 맞추며 환담했다.
이후 교황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 정부 주요 인사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천주교 주교단 등 오른쪽으로 늘어선 영접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나눴다. 교황은 세월호 유족들을 소개받자 왼손을 가슴에 얹고 엄숙한 표정으로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이들을 위로했다.
인천 용유초 동창생으로 환갑 기념 여행에 나섰다가 희생된 정원재(61)씨의 부인 김봉희(58)씨는 현장에서 많은 눈물을 흘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씨는 "본당에서 성소회장을 하면서 사제를 2명이나 낼 정도로 남편은 사목활동을 열심히 했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보고 싶고, 마음이 아파서 교황님을 뵙기 전부터 내내 눈물이 났다"고 했다.
사제가 되기를 꿈꿨던 예비신학생 고 박성호군의 아버지 박윤오(50)씨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교황을 뵙게 될지 몰랐다. 영광인데 실종자들에게 미안하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잘못한 쪽에 회개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세월호 유족뿐만 아니라 이날 공항 영접에는 북한이탈주민과 이주노동자, 범죄 피해자 가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자와 중·고교생 등 '보통사람들' 32명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마중했다. 철거민을 도와 빈민운동을 했던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73·브레넌 로버트 존) 신부 등 한국에서 약자들과 함께해온 외국인 선교사들도 초대됐다.
영접에 참여한 북한이탈주민 김정현(가명·58)씨는 "25년 만에 오는 교황을 뵐 수 있다니 영광이다. 평화 통일과 종교가 없는 북한을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한준비위원회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교황은 우선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에 첫 만남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 사회에서 아픔의 사건을 겪고 있는 세월호 가족분들과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하고 교회 안에서도 귀감이 되는 분들로 초청했다"고 밝혔다. 이날 영접에는 방한을 축하하는 예포 21발을 발사한 것 말고는 특별한 행사가 마련되지 않았다.
영접에 참석한 50여명의 환영단과 악수를 나눈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식 의전 차량인 국산 소형차 '쏘울'에 올랐다. 차량에 오르기 전 건너편에서 취재를 하고 있던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공항을 떠나 주한 교황청 대사관으로 이동하였고 승차중인 준중형차 쏘울에 탑승한 교황은 창문을 열고 환영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으며 쏘울 승용차 뒤로는 삼엄한 경호차량들이 줄줄이 따르고 있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변에 대한 중요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