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지난 5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데이트를 하러 나온 최모(20)씨와 박모(22·여)씨가 연극 티켓을 손에 들고 바쁘게 뛰고 있었다. 방금 전 지하철 혜화역 앞에서 20대 여성 호객꾼의 말에 이끌려 표를 샀는데 받아들고 보니 오후 8시 정각에 시작하는 공연이었다고 한다.
최씨는 "어떻게 8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8시에 팔 수 있느냐"며 "제시간에 입장하지 못할 것 같은데 환불은 할 수 있나 걱정이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열심히 뛰어 혜화역에서 500m쯤 떨어진 극장에 오후 8시12분 도착했다. 안내원은 "표에 지정된 좌석엔 지금 다른 관객이 앉아 있을지 모른다. 어두우니 자리 잘 찾아가시라"며 최씨 커플을 들여보냈다.
소극장이 밀집한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연극 호객행위로 인한 시민 불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극계의 자정 노력과 함께 대책이 시급하다.
이날 혜화역 1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벽면에는 호객행위로 연극 티켓을 사고팔지 말자는 한국소극장협회, 서울연극협회,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등의 광고가 붙어 있었다. 광고에는 '연극은 예술입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호객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호객행위 연극 티켓은 위법이니 팔고 사지 맙시다' '호객행위가 대학로를 죽이고 있습니다' '호객행위, 건전한 공연문화를 해치는 불법행위입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호객행위는 여전했다. 오후 7시30분 혜화역 2번 출구 앞에는 공연 홍보물을 손에 든 20대 남성 4명이 행인들에게 "예매하셨나요" "공연 보러 오세요" 하며 끊임없이 잡아끌었다. 한 20대 여성은 지하철역에서 나와 200m 떨어진 식당에 들어갈 때까지 호객꾼을 세 번이나 뿌리쳐야 했다.
회사원 김선호(31)씨는 "연극을 볼 생각이 없는데도 자꾸 따라와서 수차례 거절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한은영(29·여)씨도 "혜화역 1·2번 출구 쪽은 호객하는 사람이 많아 다른 출구로 돌아서 나온다. 마로니에공원에서 조금 쉬려고 해도 호객꾼이 자꾸 다가와 찾아갈 엄두가 안 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서울시는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에 호객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건의했다. 이에 지난 29일 '사행행위'를 금지할 수 있게 한 지역문화진흥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호객행위가 사행행위에 포함되는지 판단할 공연법상 근거가 없어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조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한국소극장협회 정대경 이사장은 "대학로에서 10년 이상 지속된 호객행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경범죄 위반으로 3만∼5만원 벌금이 부과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호객행위로 표를 사서 연극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 실망과 환멸을 느끼고 다시는 연극을 찾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대학로의 가장 큰 문제"라며 "관객에게 공연을 안내하는 '공식안내원'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