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해소-근로능력자 빈곤탈출 두 마리 토끼 잡기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저소득층의 마지막 보루 구실을 하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전면적으로 바뀐다.
정부는 14일 서울청사에서 사회보장위원회를 열어 '맞춤형 복지를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빈곤정책 개편방향'을 심의, 결정했다. 이 방안은 오는 10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거쳐 내년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2000년 10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이후 정부가 부분적으로 손질한 적은 많지만, 전체 틀을 뜯어고치는 것은 14년 만이다. 이 제도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도입됐다. 기업 구조조정으로 실업이 급증하는 혼란의 와중에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해 기초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의 최저생활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노인과 장애인 등 일할 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에 대한 빈곤정책 이외에는 이렇다 할 복지대책이 없던 상황에서 이 제도는 나름대로 사회 안전망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이때 처음으로 비록 근로능력은 있지만, 실직 등으로 말미암아 위기에 빠진 저소득층도 처음으로 국가로부터 최저생계비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40만여명(전체 인구의 2.8%)이다.
◇ 왜 바꾸나
저소득층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면서 근로빈곤층이 빈곤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돕자는게 이 제도의 기본 목표다.
그렇치만 빈곤층은 계속 늘고 중산층은 감소하는 등 제도의 실효성이 점점 떨어지면서 중장기적으로 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실제로 우리나라 절대빈곤율은 2006~2011년 8%대에 달하고 있고, 상대빈곤율도 14%대에서 오르내리는 등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제도 시행으로 일을 통해 수급자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자립역량을 강화하는데 힘썼는데도,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워킹푸어(근로빈곤층)가 2001년 8.2%에서 2007년 10.8%, 2011년 10.2% 등으로 늘고 있다.
여기에다 사회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빈곤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상대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부가 이 제도의 전면 개편에 나서게 된 이유이자 배경이다.
◇ 제도 개편 효과 있을까
정부의 개편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복지 사각지대를 해결하고 근로빈곤층의 근로의욕을 북돋워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
이를 위해 먼저 수급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까다롭게 따지던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어,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한 선택의 벼랑 끝에 내몰렸던 일부 저소득층의 숨통을 틔워주기로 했다.
정부는 그간 소득인정액(소득+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이 최저생계비를 밑돌고, 곁에서 돌봐줄 친인척이 없거나, 있더라도 부양할 경제적 능력이 안된다고 판단될 때만 수급자 자격을 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가혹하다는 비판이 잇따를 정도로 원성이 터져 나왔다. 실제로 '부양의무자' 기준이라 불린 수급자 선정 기준 탓에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데도,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非)수급 빈곤층이 2010년 현재 117만명에 이른다.
또 하나는 이른바 '통합급여' 방식에서 수급자 개개인의 형편에 맞춘 일명 맞춤형 '개별급여'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간 수급자는 수급자 선정 기준을 통과해 일단 수급자가 되기만 하면, 생계비부터 시작해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출산비, 장례비 등 모두 7가지에 이르는 급여혜택을 모두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준을 넘지 못하거나 비록 기준을 통과해 수급자가 되었더라도 나중에 형편이 나아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면 수급자에서 자동으로 탈락해 모든 급여혜택을 받을 수 없는 처지로 빠졌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은 어떻게든 수급자가 되거나 수급자로 계속 남아 있으려 시도하거나,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근로소득을 올리려고 하지 않는 등 부작용을 낳았다. 이 제도가 수급자의 소득이 늘수록 급여혜택은 줄어드는 방식이다 보니,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라도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실제로 수급자 중에서 취업자 비중은 2001년 15.4%(약 21만명)에서 10.6&(15만명)으로 뚝 떨어졌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이다 보니, 정부는 정부대로 그동안 일부 지원만 필요한 저소득 위기가구 등에 대해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급자 개인별로 각자의 사정에 맞춰 급여별 선정기준을 별도로 마련해 생계비가 필요하면 생계비를, 의료비가 필요하면 의료비를, 주거비가 필요하면 주거비를 각각 지원해주는 쪽으로 급여제공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이를 통해 기초수급자에게도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 적용하는 등 인센티브를 강화해 일할수록 유리하도록 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각 부처가 제각각 저소득층 지원사업을 벌이는 등 복지지원제도 간 상호협력 체계가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빈곤정책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로서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해 저소득층 지원 조정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밖에 정부는 잠재빈곤층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사전 예방에 힘쓰기로 했다.
이를 위해 차상위계층의 범주를 최저생계비 120%에서 중위소득 50%로 바꿔 현재 340만명 가량인 급여혜택 저소득 계층을 430만명으로 확대해 이들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빠지기 전에 각자의 여건에 적합한 맞춤형 지원을 하기로 했다.
◇ 부작용은 없을까
개별급여 방식으로 바뀌면서 수급자의 급여혜택이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간은 선정 기준만 무사 통과하면 수급자는 각종 급여혜택을 다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맞춤형이란 이름으로 급여제공 방식이 바뀌면서 기존 수급자가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임호근 과장은 "대부분 수급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수급 받게 된다"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자기 집을 가진 수급자는 주거급여 현금을 받지 못하게 돼 급여혜택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자가 소유 수급자도 현금 대신에 집수리 비용 등으로 현물로 지원을 받기에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임 과장은 설명했다.
임 과장은 지금보다 급여대상을 넓힌데다 생계급여를 충분히 지원하기 때문에 혜택은 더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2013년 현재 6조9천억원 가량인 기초생활보장 예산을 해마다 1조5천억원 추가해 한해 8조5천억원 정도로 확대할 계획이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4 16:4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