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문창극 자진사퇴 설득 실패한 듯
[류재복 대기자]
지난 21일 오후 중앙아시아 3국(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 거취 논란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막판 고심 중인 것으로 23일 전해졌다.하지만 청와대는 이날 오전 현재까지도 문 지명자의 자진사퇴를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져, 박 대통령과 문 지명자가 정면충돌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지명자에게 충분히 해명한 뒤 자진사퇴하는 쪽으로 설득했지만 일단 실패한 것 같다"고 말했다.박 대통령은 이날 일정을 최소화한 채 문 지명자 거취 문제 해법을 찾는 데 집중했다. 오전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신임 수석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오후 방한한 벤 반 뷰어든 로열더치셸 대표를 접견하는 게 이날 공식 일정의 전부였다.
이 때문에 오전에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주재했다.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순방 기간과 귀국 후 참모들로부터 종합적인 보고를 받고, 악화된 여론을 감안할 때 문 지명자가 총리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우며 그의 거취 논란도 이른 시간 내에 매듭지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문 지명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지명을 철회할 경우 정권은 물론 문 지명자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 원만한 해결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여권 관계자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문 지명자가 스스로 거취를 정리해 주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당사자가 '친일파, 매국노로 매도된 것은 억울하다'고 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지명철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기 어렵다는 점을 모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박 대통령이 직간접적인 대화를 통해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문 지명자를 설득할 가능성이 주목된다. 문 지명자가 자진사퇴하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전효숙 방식'의 모양새는 갖추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2006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했지만 지명 절차를 둘러싼 법적 하자 논란으로 4차례 국회 본회의 상정이 무산되는 진통을 겪자, 전 후보자가 지명철회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매듭지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문 지명자가 격앙된 어조로 억울함을 토로했던 지난주와 달리 23일 오전 출근길에는 차분하게 말을 아꼈고 보수 진영 원로들이 성명을 통해 문 지명자의 억울함을 두둔하고 나선 것 등이 '원만한 해결'로 가기 위한 징후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국정 파행과 공백의 심각성 때문에 박 대통령이 문 지명자에게 더 이상 시간을 주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지명자만 빼고 장관 지명자들의 인사청문요청서만 먼저 국회에 제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문 지명자 거취 문제가 빨리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