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알아서 부를 테니 정부는 5·18 왜곡에나 대처하라"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5월의 아리랑'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정작 5월만 되면 수난을 겪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별도의 노래를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훈처는 올해도 기념곡 공모를 하기로 하고 별도의 예산을 책정해 해묵은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국내외로 퍼진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소설가 황석영 씨가 백기완 씨의 시 '묏비나리'를 개작한 노랫말에 당시 전남대생 김종률 씨가 곡을 붙였다.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약하다 전남도청에서 산화한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이 1982년 제작된 음반에 수록되면서 알려졌다.
이후 유공자와 유족들이 주관하는 추모제에서 불렸으며 1997년 공식 기념일로 지정되고서도 꾸준히 사실상 기념곡의 역할을 했다.
민주화 시위는 물론 각종 사회단체의 민중의례에서는 애국가를 대신해 불리며 인디 밴드 등에 의해 록 버전으로 리메이크되고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번안되기도 했다.
◇공식 기념곡 지정 추진에 수난
2006년 공식 기념곡을 지정하려다가 중단한 보훈처는 2009년 국민공모를 추진했다가 반대 여론에 막혔다.
임을 위한 행진곡 갈등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은 5·18 30주년인 2010년이었다.
보훈처는 당시 기념식에서 흥겨운 경기민요 '방아타령'을 연주하기로 했다가 부랴부랴 민중가요인 '마른 잎 다시 날아나'로 대체했다.
기념식에서 제창돼 온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9년에 이어 본행사에서 밀려나 식전 행사 중 합창단 공연으로 대체됐다.
5·18 기념행사위원회가 이에 반발해 옛 묘역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열면서 30주년 기념식은 두 쪽으로 갈라지기도 했다.
2011년에는 기념식 끝에 합창단이 합창했으며 지난해에는 기념식 후 공연에서 합창됐다.
보훈처는 올해 기념식에서 합창할지, 제창할지 검토하고 있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지난 2일 광주를 방문해 "예년과 같이 하는 것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훈처 '고립무원'…여권도 비난
보훈처는 지역 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여야 없이 비난을 받고 있다.
광주에서는 보훈처의 움직임에 반발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려는 대책위원회가 결성되고 자치의회 결의문 채택, 항의방문, 촉구대회 등이 잇따르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지난 8일 당 최고중진회의에서 "오랫동안 불린 노래를 왜 중단시켜 국론을 분열시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기념행사용 별도 노래를 제정하기 위한 예산이 책정됐다고 하는데 아까운 예산을 낭비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까지도 보훈처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했다.
◇정작 신경 써야 할 일은…
5월 단체를 중심으로 지역 사회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을 5·18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확산하는 현상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다.
30년 세월을 거스르는 듯 '폭동'으로 왜곡하는 여론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번지는 등 5·18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시류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는 것이다.
5·18 정신계승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송선태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을 상징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게 하겠다는 보수세력의 시도는 차치하고 노래를 부르느냐 마느냐를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보훈처는 신뢰를 잃은 만큼 청와대가 명확한 입장을 밝혀 갈등을 풀어야 한다"며 "노래는 부르지 말라 해도 부를 테니 5·18 가치의 왜곡·폄하 등 현안에나 좀 신경을 써 달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2 08: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