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국가정보원이 휴일 밤늦게 돌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검찰 수사가 국정원 내부를 정면으로 겨냥하는 데다 문건 입수에 관여한 조선족 협조자 김모(61)씨가 위조를 사실상 지시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국정원은 사실상 퇴로가 막힌 상황에 직면해 있다.
국정원은 일요일인 9일 오후 9시께 '국정원 발표문'이라는 제목의 이메일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보내 "세간에 물의를 야기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 진행과정에서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3건의 문서를 중국내 협조자로부터 입수해 검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현재 이 문서들의 위조 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어 매우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다시 한번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이례적으로 '송구스럽다', '사과드린다'는 표현을 세 번이나 썼다.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이후 국정원은 해명이나 반박 자료를 여러 차례 냈지만 논란에 대해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원은 그동안 제기된 의혹에 대해 일일이 사실과 다르다고 강하게 반박해 왔다. 그러나 검찰이 진상조사에 나서면서 증거가 조작된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자 말을 계속 바꾸면서 '자가당착'에 빠졌다.
지난달 14일 유우성(34)씨를 변호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중국대사관의 사실조회 회신을 근거로 의혹을 처음 제기하자 국정원은 "공식적으로 발급된 문서로서 하자가 없다"고 반박했다.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 사실조회서에 대해서는 "대검찰청과 외교부 등을 통해 정식으로 발급된 기록이지만 구체적인 발급절차나 발급권한은 알 수 없다"고 했다.
국정원은 싼허(三合)변방검사참 명의의 양측 문서에 찍힌 관인이 다르다는 대검의 문서감정 결과로 자신들이 입수한 문서가 사실상 위조로 판명됐는데도 "관인이 다른 것과 문건의 진위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맞섰다.
다른 중국 기관의 공문서를 제시하며 "같은 인장도 날인할 때 힘의 강약이나 인주상태에 따라 글자 굵기 등이 달라진다"고 주장해 검찰의 문서감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국정원은 협조자 김씨의 검찰 조사와 자살기도로 증거조작의 윤곽이 일부 드러난 지난 7일 급기야 자충수를 뒀다.
김씨의 유서에 등장하는 '가짜서류 제작비 1천만원'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싼허변방검사참 명의 답변서의 입수비용은 이미 지불했고 유서에 나온 가짜서류 제작비는 답변서와 별개"라고 밝혀 협조자에게 돈을 주고 문서를 입수해온 관행을 자인했다.
국정원은 김씨가 신분을 보호해야 하는 정보원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위조 의혹을 해소해줄 것으로 보고 검찰에 출석시켰다. 그러나 김씨가 세 차례에 걸쳐 조사받는 과정에서 진술을 바꾸는 바람에 지금까지 '거짓 해명'을 해온 사실이 탄로 났다.
일요일 밤 '대국민 사과' 발표는 검찰이 진상조사를 수사 체제로 공식 전환하며 강제수사 압박을 가해오는 상황에서 김씨의 자살기도가 결정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유씨 간첩혐의 사건의 수사와 공소유지의 파트너였던 검찰이 수사 의지를 강하게 보이는 데다 정치권 역시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어 더 이상 '아군'이 없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수사 경과에 따라선 수뇌부까지 조사 대상으로 거론될 조짐이 보이자 조직 내부의 책임자를 명확히 가려내는 선에서 사태 확산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국정원은 발표문에서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해서 이번 계기를 통해 거듭나는 국정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10 20:2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