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최장기록 경신…민주노총에 공권력, 극심한 노정갈등 비화
국민불편·산업피해만 '눈덩이', 대화 나서야
(대전=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며 지난 9일 시작된 철도노조 파업이 연일 최장기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열차 운행률이 파업 3주차인 23일부터 70%대까지 떨어지고, 특히 화물 열차 감축으로 산업계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4일로 파업이 16일째를 맞은 사이 7천712명(24일 0시 기준)에 가까운 파업참가 노조원이 직위해제됐고 노조 실무간부 2명이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철도노조 집행부가 은신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 민주노총 본부에 지난 22일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했다가 단 한 명의 집행부도 검거하지 못하면서 노동계의 거센 반발만 사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강경 대응에 맞서 오는 28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한국노총도 정부와의 모든 대화 중단을 발표, 연말 극심한 '노-정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파업 장기화 '부채질'
정부는 철도파업이 시작된 뒤 그동안 수시로 노조에 대해 "불법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16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철도파업은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국민 경제에 피해 주는 전혀 명분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노조가 파업을 이어가자 경찰은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집행부·실무간부 28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고 지금까지 2명을 구속했다.
나머지 26명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가던 경찰은 노조 집행부가 민주노총에 은신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2일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사상 첫 진입하는 초강수를 두고도 검거에는 실패했다.
결국 경찰이 '노동자의 성역'으로 인식돼온 민주노총 본부에 대해 무리하게 추진한 첫 공권력 투입은 노동계와 야권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민주노총은 28일 오후 3시를 기해 총파업에 돌입할 것을 결의한 상태이다.
한국노총도 "민주노총에 대한 폭압적인 공권력 투입에 대해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며 노사정위 불참을 비롯한 정부와의 모든 대화 중단을 발표했다.
그동안 내·외부의 여러 악조건으로 노조의 파업 동력이 점차 소진되던 상황에서 정부와 경찰의 초강수 점거작전은 '꺼져가던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에 따라 이번 파업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 철도운행률 '뚝'…산업계 큰 피해
파업 초기 코레일은 필수유지인력 8천418명과 대체인력 6천35명을 모두 투입해 KTX와 수도권 전동열차, 통근 열차를 평상시와 같이 운행하는 한편 새마을·무궁화호 운행률도 75% 수준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17일부터는 대체인력 피로도와 사고 위험성 등 때문에 KTX 열차 운행이 평시 대비 88%로 주는 등 열차 운행률이 낮아졌고, 23일부터는 KTX 운행률이 73%까지 떨어지고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평소의 59.5%, 63%만 각각 운행되고 있다.
특히 화물열차 운행률은 파업 초기 40%대에서 지금은 20% 후반대로까지 줄어들어 연말 물류난이 가중되고 있다.
충북 제천의 아세아 시멘트 공장에는 전체 5만t의 시멘트를 저장할 수 있는 8개의 사일로에 4만4천t의 시멘트가 가득 차 있는 등 극심한 물류수송난에 부딪혔다.
지난 14일 이후 공장가동을 제한했고 급한 대로 육로운송을 통해 발등의 불을 끄고 있으나 이마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파업 4주차인 오는 30일 이후에는 KTX 운행률이 56.9%로 더 줄어들고 화물열차도 20% 수준만 운행된다. 내년 1월 6일 이후에는 필수유지 대상이 아닌 화물열차는 운행을 전면 중단한다.
코레일은 이 같은 감축운행에 따른 영업손실액에 대해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1차적으로 9∼16일 손실액 77억을 먼저 청구했고, 이후 파업 종료시까지 손실액을 추가 청구하면 손해배상액은 200억원을 넘길 수도 있다.
◇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이 '파업 불씨'
지난 17일로 역대 최장기 기록을 이미 경신한 이번 파업의 불씨가 된 철도운영 경쟁체제 도입 논의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12월 당시 국토해양부는 1899년 경인선 개통 이래 113년간 누려온 코레일의 독점 체제를 깨면 철도 운영의 효율성이 증대돼 서비스 개선, 요금 인하 효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 아래 수서발 KTX 운영권을 민간에 줘 코레일과의 경쟁을 유도한다는 내용을 2012년 주요 업무계획의 하나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때 불붙은 철도 민영화 논란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현 정부로 넘어왔고 정부와 코레일이 수서발 KTX 운영회사를 코레일 자회사로 출범시키는 동시에 민간자본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겠다고 했으나 노조는 '꼼수'에 불과하다며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지난 8일 철도 노사는 마지막 본교섭에 나섰지만 모두 발언을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놓고 극심한 견해차를 보이다 결국 교섭이 중단됐고 노조는 9일 오전 9시를 기해 총파업에 돌입했다.
코레일은 파업 이튿날인 10일 오전 임시 이사회를 열어 수서발 KTX 법인 설립·출자 계획을 만장일치로 의결했으며 노조는 이 의결이 철도산업발전기본법 등에 위배돼 무효라며 11일 대전지법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수서발 KTX 법인 설립과 관련해 코레일은 지난 13일 대전지법에 설립비용 인가를 신청했으며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대전시민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서로가 강경 입장으로만 대치해서는 해결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며 "현 상황에서 한발씩 물러서 냉정을 되찾고 지금이라도 차분히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2/24 14:39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