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잖아요. 부끄럽죠. 더 많이 드리면 좋은데 내 형편이 그렇지 못해 늘 미안합니다."
부끄럽다. 미안하다. '기부천사'가 등장하는 여느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고 나와 이제는 상투적으로 들리는 말이다.
지난 20일 기자와 만난 조명자(71) 할머니는 꼭 이렇게 말하며 손사래 쳤다. "나보다 기부 많이 하는 사람이 천지에 깔렸다"고도 했다.
23일 아름다운재단에 따르면 폐지를 주워 파는 조 할머니는 2000년 11월부터 재단을 후원하는 '장수 기부왕'이다. 없는 형편에도 꼬박꼬박 월 1만원의 후원금을 냈다.
누적 후원금 입금 횟수는 145회. 2009년 뇌출혈로 쓰러졌던 때를 제외하면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후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조 할머니다.
할머니가 폐지와 재활용품을 팔아 손에 쥐는 돈은 2∼3일에 1만5천원 정도다. 한 달에 20만원이 채 안 된다.
할머니가 폐지팔이로 생계를 꾸린지는 7년여째. 치매 초기인 부군 대신 할머니가 가계를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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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지 줍는 기부천사 할머니 "더 못드려 죄송합니다"
-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폐지를 주워파는 조명자 할머니는 2000년 11월부터 재단을 후원하는 '장수기부왕'이다. 없는 형편에도 꼬박꼬박 월 1만원의 후원금을 냈다. 누적 후원금 입금 횟수는 145회. 2009년 뇌출혈로 쓰러졌던 때를 제외하면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2013.12.23 << 사회부 기사 참조, 아름다운재단 제공>> photo@yna.co.kr
이전엔 미장일 등 여러 일을 했지만 할아버지가 병이 난 후 손수레를 잡았다. 1남 2녀를 뒀지만 형편이 어려워 손 벌리기가 여의치 않다.
할머니는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적은 없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는 생각에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할머니는 "평생 많은 일을 했지만 이상하게 성공 한 번 못하고 늘 어렵게 살았다"며 "누가 도와줬으면 하고 늘 생각했지만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고 쓸쓸히
말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니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생각난다고 수줍게 말한 할머니는 "적은 돈이지만 누군가에겐 보탬이 된다면 참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3월 할머니는 고심을 거듭한 끝에 기부금을 절반으로 줄였다. 가뜩이나 좋지 못한 가계 형편이 더 나빠지고만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기부금을 줄인다는 전화를 걸기 전에 얼마나 망설였는지 몰라요. 하지만 할아버지 약값하고 협심증 수술비를 내야 하는데다 폐지값도 너무 많이 내렸어요. 그렇다고 기부를 끊을 수도 없고…"
요즘 할머니는 더욱 걱정이 크다. 3월부터 월 20만원의 수입을 올려주던 독거노인 돌봄 일자리 활동기간이 이달로 끝나기 때문이다. 내년부터는 수입이 훨씬 줄어들지만 이제는 칼바람을 맞으며 밖에 나가는 게 망설여지는 날이 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새해 소망을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건강해야 계속 남을 도울 수 있고 남의 신세를 덜 지죠. 없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게 경기가 좀 풀렸으면 좋겠어요."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2/23 10: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