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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철도민영화 저지, 노동탄압 중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DB>>
전문가들 "힘의 논리 버리고 공존자로서 인정해야"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12월 14일 오후 3시 서울역 광장에서는 철도노조와 민주노총 조합원, 진보 성향 시민단체 회원 등 1만여 명이 모여 대규모 시국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서는 주요 이슈인 철도 민영화 문제를 비롯해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논란 등 정치·경제·사회를 망라하는 다양한 구호가 나왔다.
같은 시간 길 건너편의 한 빌딩 앞에서는 보수단체 회원 500여 명이 이른바 '종북세력'을 규탄하는 맞불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함을 치며 반목하는 모습은 이제 서울 도심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건전한 비판과 대화로 해법을 찾으려 하지는 않고 서로 상대를 '종북 세력' 또는 `수구 세력'으로 몰아세우며 감정적 소모전을 벌이는 판이니 지켜보는 국민의 실망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기 침체로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날로 심화돼 사회 통합을 더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도 심각한 보수-진보 갈등을 겪었다. 최근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 종교계까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사건 등을 놓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이 먼저 제시하는 해법은 `대화'이다. 진보든 보수든 이길 궁리만 하지 말고 대화하는 자세로 돌아오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어느 쪽이든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현 상황이 심각한 상태라는 데 먼저 합의해야 할 것 같다"며 "지금은 고려대생이 쓴 대자보처럼 '안녕하기 힘든' 상황이며, 이런 사실을 서로가 우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기면 된다는 식의 힘의 정치가 아니라 공존자로서 서로 가치를 확인하는 소통의 장으로 가야 한다"며 "우선 권력을 가진 쪽부터 일단 멈춰, 듣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뭣이라고 말만 하면 '종북'이라고 낙인찍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서는 대화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진보-보수 양 진영 모두 갈등을 푸는 방법에서 너무 서투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고, 갈등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다"면서 "다만 우리 사회는 갈등을 푸는 방식이 지나치게 극단적이어서 논리를 너무 단순화시키고 이분법적으로 몰아가고 있어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통합은 갈등과 상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갈등을 잘 관리하는 것"이라면서 "사회 구성원 간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것을 인정하고 공정한 룰을 만들어 그 룰을 잘 지켜가면서 갈등 관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갈등의 당사자가 되지 말고 갈등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갈등의 고리를 끊어줘야 하지만 지금은 갈등의 진원지도 정부이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도 정부인 듯하다"며 "이 때문에 일자리와 복지 등 시급한 정책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공약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이 먼저 소통을 시도하고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되, 정부가 입장을 밝혀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념적 대립도 문제지만 장기 불황의 여파로 더 심각해진 사회 양극화 또한 사회 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4천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지만, 소득분배 지표 등을 보면 계층간 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9월 말 현재 소득분배 지표(5분위 배율)를 봤을 때 고소득층(5분위 계층)의 가처분소득이 저소득
층(1분위 계층)의 5.05배에 달해 지난해(4.98배)보다 더 커졌다.
경제가 성장해도 그 과실은 상위층만 누리게 된다는 상대적 박탈감도 사회 분위기를 한층 더 위축시키고 있다.
통계청이 12월 4일 발표한 '2013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의 소득과 교육, 재산 등을 고려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설문했을 때 국민의 46.7%가 자신이 '하층'이라고 답했다. 반면 '상층'이라고 답한 사람은 1.9%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가 복지, 일자리 창출 등 민생부터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시장 문제가 과거와 같이 노동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 교수는 "과거 노동시장에 진입한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의 갈등은 노동시장의 문제에 그쳤다"면서 "하지만 이 문제가 장기간 누적되면서 문화적, 이념적, 정치적으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집단을 만들어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복지를 소홀히 한 것이 갈등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정책적으로 복지 확대를 통해 청년들의 일자리나 주거, 등록금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2/19 06: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