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 무제한 양적·질적 완화로 요약되는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시행 1년을 맞으면서 한국 경제에 위협 요인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시기가 지연되는 가운데 아베노믹스 정책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 현상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구도는 한국의 주요 성장 엔진인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정부에는 이미 비상등이 들어와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 日 아베노믹스 성과…美 출구전략은 '아직'
출범 1년을 맞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일본의 3분기 GDP 성장률은 직전 분기 대비 0.3%를 기록, 2분기의 0.9%, 1분기의 1.1%에 미치지 못했다.
전반적인 그림은 1분기를 정점으로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주요 예측기관들은 3분기 성장률 둔화가 일시적인 현상이며 내년 1분기까지는 높은 성장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통화량이 증가하면서 엔저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수출이 점차 회복세를 타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플러스로 전환되는 등 물밑에서 활발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 역시 물가 목표 달성을 위해 추가 금융완화를 실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고용지표는 호전됐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완화 출구전략 시기는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지표가 개선되기는 했지만 출구전략을 단행할 정도는 되지 않다 보니 달러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원·달러 환율이 9일 달러당 1,053.0원으로 연저점을 경신하고 엔·달러 환율은 103엔 고지를 넘보는 등 상황이 발생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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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감만부두에 수출입화물을 실은 배들이 접안해 있다. <<연합뉴스DB>>
- 부산 감만부두에 수출입화물을 실은 배들이 접안해 있다. <<연합뉴스DB>>
원화 가치는 강세로 가는데 엔화 가치는 계속 약세로 진행되면서 1,020원대에 내려가 버렸다.
◇ 對일본 경합 업종 타격 불가피
아베노믹스의 성공은 한국 경제에 긍정·부정적인 요인을 동시에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효과가 더 많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긍정적인 부분은 일본 경제의 회복이 세계 경기 개선으로 이어져 국내 수출 경기에도 훈풍을 불게 해주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아베노믹스 일본경제 살리고 있다' 보고서에서 일본의 GDP가 1% 추가 성장하면 세계 GDP는 0.08%포인트, 2% 성장하면 0.17%포인트 상승 효과를 낸다고 추정한 바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엔화 약세에 기반한 아베노믹스의 성공은 한국 수출 경쟁력의 약화로 연결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 약화다. 철강, 기계, 전기전자 등 부분에서 일본과 경합하는 산업의 경우 특히 타격이 불가피하다.
일본에 대한 수출 부진에 따르는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관광수지도 악화되고 있다.
일본인의 한국 관광이 줄어드는 가운데 한국인의 일본 관광이 늘어나는 현상도 이런 맥락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일본 자금의 유출도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원·엔 환율이 10% 떨어지면 2분기 한국의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한다는 분석을 앞서 내놓은 바 있다.
다만 비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해외 생산이 늘어나면서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차 줄어든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아베노믹스의 급격한 실패도 한국으로선 바람직스럽지 않은 결과가 될 수 있다.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고 이 때문에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일본 경기가 급락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에서 일본과 상당 부분 연동돼 있는 한국 경제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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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외환은행에서 관계자가 1만엔 짜리 지폐뭉치 앞에서 달러를 세고 있다. <<연합뉴스DB>>
- 서울 중구 외환은행에서 관계자가 1만엔 짜리 지폐뭉치 앞에서 달러를 세고 있다. <<연합뉴스DB>>
◇ 당국 "노코멘트"…대응책 부심
아베노믹스 1년을 즈음해 원화 강세·엔화 약세 현상이 심화되면서 외환 당국 역시 한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지만 시장 대응은 최소화하는 분위기다.
외환당국 고위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시장에 불필요한 혼선을 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면서 현 시장 상황에 대해 '노코멘트'했다.
이는 지난 10월말 원·달러 환율이 연저점을 경신하자 즉시 강도 높은 개입에 나선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2008년 이후 5년 만에 공동으로 구두 개입에 나선 직후 대규모 달러 매수 개입을 단행했다.
이런 입장 변화는 미국 출구전략 시행시기 및 일본 아베노믹스 등 대외변수가 한국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선 이상에서 벌어지고 있어 애꿎은 실탄만 허비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투기적 거래나 시장 쏠림 등으로 환율이 급변동할 때에는 적극적인 시장안정 조치에 나설 수 있지만 전반적인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 규모를 연일 경신하는 경상수지 흑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 개입에 나서기 어려운 부분이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국제금융센터 등 관계 당국은 필요하다면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가시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지만 아직 이런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는 시장 개입보다 환 위험에 취약한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카드를 제시하는 방식의 미시 대책을 구사해왔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환변동보험 이용을 활성화하는 등 대책이 이런 차원에서 추진됐다.
선물환포지션 한도 규제·외환건전성 부담금 부과·외국인채권투자자금 비과세 등 이른바 3종 세트를 손대는 것은 현재로서는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많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2/10 07: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