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에쿠스급 핫핑크' 한달만에 650대 팔려
한국에서는 튀는 차 끌면 '부담', 중고차 시세도 ↓
(서울=연합뉴스) 이유진 기자 = 1. 세계 최대 자동차제조업체인 일본 도요타는 최근 핫핑크를 입힌 '크라운 애슬리트' 차량을 선보였다.
크라운은 경차가 아니라 배기량 2천499∼3천456cc의 대형 고급 세단이다. 국산차로 치면 에쿠스급의 관료적이고 딱딱한 차다. 핫핑크 크라운은 50대 최고경영자(CEO)가 꽃무늬 수영복만 걸치고 회사에 출근한 듯한 느낌이다.
도요타는 일본에서 9월 한달간 핫핑크 크라운의 선주문을 받고 12월에 차량을 인도하기로 했다. 과연 몇대가 팔렸을까? 한달만에 무려 650대가 계약됐다.
2.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모(33)씨는 최근 현대자동차[005380]의 '투싼ix' 차량을 구입하기로 했다. 고심 끝에 차종을 결정하고 트림을 고르고 옵션을 넣은 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색상 선택에서 뜻밖의 난관에 부닥쳤다.
"무난하게 회색으로 주세요"라는 요청에 이름도 낯선 슬릭실버·하이퍼메탈릭·티타늄그레이 등 3가지 선택지가 돌아온 것. 그는 연하고, 진하고, 더 진한 회색들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이 차량은 총 9가지 색상을 갖췄지만 유채색은 빨강, 주황, 파랑의 3가지뿐이고 나머지는 검은색 1종, 흰색 2종, 회색 3종 등 무채색이다. 국내 소비자의 무채색 선호도가 워낙 강해 무채색 옵션이 그만큼 넓은 것이다.
8일 현대차에 따르면 이 업체의 색상표에는 총 51가지 색이 있다. 그러나 고객의 90% 이상은 무채색을 선택한다.
올해 1∼10월 현대차에서 가장 많이 팔린 3개 차종(아반떼·쏘나타·그랜저)의 색상별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무채색 비중이 아반떼 96.7%, 쏘나타 92.4%, 그랜저 98.8%로 나타났다. 모두 승용차인 점을 감안해도 압도적인 쏠림 현상이다.
차급이 올라갈수록 무거운 색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아반떼는 흰색(크리미화이트)이 48.5%로 비중이 높았지만 쏘나타는 회색(하이퍼메탈릭·슬릭실버)이 48%로 흰색(30%)을 웃돌았고 그랜저는 59.6%가 검정(블랙다이아몬드)을 선택했다.
노란색(쏘나타), 담황색(그랜저) 등은 열달간 한대도 팔리지 않았다.
르노삼성자동차도 상황은 비슷해 SM3는 무채색 판매량이 96.9%, SM5는 99.2%를 차지했다.
준중형인 SM3는 흰색(백진주 포함)이 50.8%로 가장 많이 팔렸고, 중형 SM5는 흰색과 회색(울트라실버·마르스그레이), 검정이 각각 33.2%, 33.7%, 32.3%로 고르게 팔렸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출퇴근 용도가 대다수인 만큼 회사에 튀는 색상을 끌고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 많고, 평범하지 않은 색상은 중고차 시세도 떨어지기 때문에 안전한 '무채색 평준화' 현상이 나타난다"고 전했다.
자동차용 페인트를 생산하는 글로벌 화학업체 바스프(BASF)의 치하루 마쓰하라 수석 컬러 디자이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동차 색상은 앞으로도 무채색이 지배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젊은 세대와 여성의 자동차 구매 비율이 늘고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라임그린·파스텔톤 등 새롭고 스타일리쉬한 옷을 입은 자동차가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덧붙였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08 06:1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