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 거래소, 가스公, 우리금융 등 정부 지시에 '올스톱'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김승욱 차지연 기자 = 주요 공기업은 물론 민간 증권사까지 기관장과 임원 인사가 '진공상태'를 맞았다.
일부 기관은 파행 운영 사례가 나오고 있으며, 집단 반발마저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이 미뤄져 경제 정책 집행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신용보증기금 임원추천위원회(신보 임추위)는 최근 금융위원회에 활동 재개를 요구하는 건의서 제출을 검토 중인 것으로 4일 알려졌다.
신보는 중소기업 자금 지원을 주관하는 금융 공기업이다. 신보 임추위는 지난달 금융위의 지시를 받고 신임 이사장 선임을 보류한 상태다.
신보 고위 관계자는 "금융위에 절차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를 물으니 '청와대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다'며 정확한 배경은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봉수 전 이사장이 지난달 그만둔 한국거래소의 이사장 선임 절차도 정부의 지시로 잠정 중단됐다.
한국가스공사[036460]도 지난 4월 사임한 주강수 전 사장의 후임 인선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주주총회에서 후임을 정하려던 시도는 백지화됐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정부가 '주총을 오는 9일로 미뤄달라'고 요청해 인선 작업을 멈췄다"며 "인사검증 때문인지 청와대와 조율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소 위조부품 파문과 관련해 물러난 김균섭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후임 공모도 중단됐다.
정승일 전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도 지난 5월 사의를 표명하고 퇴직했으나 여태껏 후임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최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 역시 13개 계열사 대표 선임이 '올스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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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수 전 이사장이 지난달 그만둔 한국거래소의 이사장 선임 절차도 정부의 지시로 잠정 중단됐다. 사진은 여의도 한국거래소. <<연합뉴스DB>>
지난달 말 주요 계열사 대표의 1·2순위 후보자까지 정해 정부에 보고했지만, 정부는 '인사 검증에 시간이 걸린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관장과 임원을 정하지 못하다 보니 이들 기관에선 파행 운영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신보는 이달 이사회를 열지 않는다. 안택수 현 이사장의 후임이 임기 만료일인 오는 17일까지 정해질 것으로 봤기 때문인데, 이런 예상은 빗나갈 공산이 크다.
우리금융[053000] 관계자는 "새 회장이 선임되고 정부가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계열사 진용이 갖춰지지 못해 민영화 추진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 정창영 전 사장이 물러난 코레일도 사장 후보를 공모조차 못한 채 사장 직무대행 체제로 꾸려가는 형편이다.
황건호 전 사장이 물러난 지 1개월 가까이 됐음에도 후임 사장이 선임되지 못한 우리투자증권[005940](우리금융 계열사)은 노조 차원에서 집단 반발이 나오고 있다.
우투증권 노조는 내부 게시판에 "45년 역사상 초유의 사태"라며 "(정부가) 350만 고객이 100조 넘는 자산을 예탁한 우투증권을 구멍가게 취급한다"고 비난했다.
노조는 "민간 증권사의 대표이사를 뽑는 데 금융위는 대표이사 직무대행마저 금지해 도를 넘는 '관치금융'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되풀이되는 기관장 인선의 난맥상을 바로잡으려고 공기업 인사 시스템을 개선키로 했지만, 올해 상반기가 지나도록 구체적인 개선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임추위나 인사소위원회 등 임원 선임 절차를 모두 재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홍재근 중소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하반기 업무 추진에 속도를 내야 하는데 기관장 공백은 치명타"라며 "국정감사까지 치르면 일할 시간이 없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04 06:0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