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방한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이건 내 얘긴데' 하는 공감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 페이지를 읽고 나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이질적 체험에 대한 기대도 있지요. 이런 상반된 느낌이 책을 읽는 데 가장 중요합니다."
1999년 '일식'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 히라노 게이치로(38)가 방한해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한 카페에서 히라노는 자신의 독서 체험과 문학관, 소설의 미래에 대한 얘기를 폭넓게 들려줬다.
히라노는 "소설을 쓸 때 공감을 염두에 두는 한편 (독자가 작품을) 읽고 나서 바뀌지 않으면 읽어도 소용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내게 공감과 이질감을 같이 느끼게 해 준 작품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책을 읽는 애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축구하러 다니던 열네 살의 작가는 우연히 미시마의 '금각사'를 읽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작품의 깊은 힘과 화려한 문체에 압도당했다"는 작가는 발자크와 보들레르, 괴테 등으로 독서를 넓혀갔다.
"그 시절 학교를 무리 없이 다니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느껴지던 소외감과 거리감을 작가들이 응원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작가들이 마치 동료처럼 느껴졌고… 문학의 세계에 나를 지지하는 동료가 많다고 여기면서 내 언어를 발산해보자 생각한 것이 작가가 된 계기 같습니다."
작가는 작품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말 일본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정체된 분위기가 있었지만 2000년을 넘어서는 세계가 바뀌었다는 느낌이 강했다고 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인터넷의 등장이 있었고 히라노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버금가는 커다란 기술혁명"이라고 여겼다.
작가는 "2000년대 들어 변화해가는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썼고 그런 소설들을 쓰지 않았으면 지금 시대에 요청을 받는 소설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책보다 인터넷을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SNS를 두 시간 보는 것보다 소설을 두 시간 보는 게 더 좋았다고 할, 그런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처럼 일본에서도 순문학 독자들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작가는 "일본에서 순문학을 읽는 독자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지 않는 등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면서 "순문학의 독자가 줄면서 작가들에게도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9월께 한국에 번역출간되는 작품 '결괴'에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들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는 "1990년대에 일본에서는 '소설은 이제 끝났다'는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왔고, 때마다 소설이 끝났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세계의 변화 속에서 소설도 변화하고 있고 소설이 끝났다는 말은 오만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16 11:5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