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르'서 영감 얻은 작품
노년의 삶 속 존재의 환희 그려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노년의 삶에서 장례식장을 찾는 일은 하나의 일상이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친구 같기도 하다. 죽음을 앞둔 삶 속에는 존재의 환희도 있다.
현대무용 '예스터데이'가 그려내는 것들이다. 15일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사흘간의 공연일정을 끝낸 이 춤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는 늙음 또는 그 절정 가까이에 도달한 노년의 삶에 대한 이해와 그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김형희 안무가 노년의 부부가 겪는 아픔과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무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 제목도 '아무르'에서 남편 조르주의 대사 중 거론된 비틀스의 명곡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사진=강일중) |
그렇지만 김 안무의 '예스터데이'가 사랑 이야기를 다룬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로병사(生老病死) 또는 구원 등 다소 종교적이면서 철학적인 내용을 대·소 도구와 무용수들의 몸짓에 의한 강한 이미지로 담아낸다.
관객들은 극장에 들어서면 들에 서 있는 풍력발전장치 같은 느낌의 세 개의 대형 바람개비와 장난감 같이 작은 바람개비 한 개가 무대에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작품은 어두운 조명 아래 무대 오른쪽 뒤켠에서 연리목이 느리고 애잔한 곡조의 피아노 연주를 하는 가운데 조명에 의해 바닥에 바람개비가 천천히 돌아가는 그림자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된다. 바람개비의 회전은 시간의 흐름이다.
이어 등장하는 남자 넷, 여자 셋 등 모두 7명의 출연 무용수 중 원래 삭발형 머리를 한 오창익을 제외하고는 파뿌리 느낌의 머리 분장을 했다. 이들은 붕대 같은 천으로 눈을 가린 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노년의 삶을 표현한다. 또 늙음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 이 작품은 예스터데이, 즉 과거의 얘기를 끄집어낸다.
작품 속에는 인형 아기가 등장하기도 하고, 어린아이 때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분장을 한 무용수들이 나와 익살맞은 몸짓을 한다.
(사진=강일중) |
흥미로운 것은 생로병사의 이미지를 전하면서도 작품이 풍자성을 띤다는 점이다. 슈퍼맨은 무력이나 폭력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똥파리로 분장한 무용수의 대사는 때로는 똥파리보다 못한 인간의 삶을 비아냥거린다. 그 어느 것이 되었든 쇠약과 노화 그리고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또 시대의 광기를 무용수들이 경련의 몸짓을 통해 묘사해낸다. 대형 바람개비가 흡사 못에 박힌 예수를 연상케 하는 것도 흥미롭다.
작품은 그러나 후반부에 무용수들의 부드러운 율동이나 장례의 이미지, 또 곡(哭) 소리를 음악화한 합창을 통해 존재의 환희를 드러낸다. 바람개비가 천천히 돌면서 어두운 조명 속에 무용수들의 시간의 흐름 뒤로 서서히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에 여운이 있다. 피아노와 첼로의 라이브 연주가 그 여운의 길이를 늘인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인간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장난감처럼 만들어진 자전거를 밑에 추를 달아 굵은 끈 위에서 미끄러져 나가도록 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최근 트러스트무용단에 합류한 오창익과 극단 뛰다의 배우 최재영를 비롯한 출연진이 조화로운 연기를 펼쳤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삶을 상징하는 자전거가 끈 위를 구르고 있다. (사진=강일중) |
◇ 현대무용 '예스터데이' = 트러스트무용단(대표 김형희) 2013년 신작. 이번 공연에 이어 국내 여러 축제는 물론 독일 등 해외에서 공연일정이 잇따라 잡혀 있다.
만든 사람들은 ▲안무 김형희 ▲글 및 연출 김윤규 ▲음악감독 연리목 ▲무대감독 박재영 ▲조명디자인 김철희 ▲의상디자인 이진희 ▲오브제 제작 옥종근.
출연진은 송명규·구선진·김동희·김영찬·김동욱·오창익·최재영·연리목(피아노 연주)·조지 더램(첼로 연주).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16 14:2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