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하사극 '대왕의 꿈'서 김춘추 열연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작품을 막 마친 배우에게 으레 하는 질문을 던졌지만 뜻밖에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수십 편의 작품을 이끌었던 배우였기에 더욱 의외였다.
그렇게 최수종은 잠시 머뭇거리다 어렵사리 "너무 많은 생각이 난다"는 말로 KBS 대하사극 '대왕의 꿈'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그의 말처럼 많은 생각이 스쳐간 표정이었다.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여름부터 10개월 가까이 최수종은 삼한통일의 주역 김춘추로 살았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끝까지 작품을 놓지 않았다. 최근 여의도에서 만난 최수종은 "이런 작품은 처음"이라고 했다.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작품을 마쳐 정말 다행입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하려던 메시지는 전한 것 같아요. 처음 작가, 연출자와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우리가 아는 김춘추가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사람들이 김춘추를 외세의 힘을 빌려 통일을 하려 했던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보다는 우리 민족끼리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통일하는 방법을 찾은 사람이라는 점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예기치 않은 부상은 작품에 걸림돌이 됐다. 방송 한 달이 채 안 돼 최수종은 교통사고를 겪었고, 촬영 중 두 번의 낙마로 오른쪽 쇄골과 왼쪽 팔에 철심을 박아야 했다.
최수종은 "너무 열심히 하려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며 "짧은 시간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다가 화를 부른 측면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떠나면 작품도 흔들린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상 중에도 목소리로 출연해오던 그는 수술 한 달 만에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어떻게 해서든 극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어렵게 촬영장에 복귀해 4개월을 버텼다. 김춘추가 죽는 장면의 대본을 읽으면서 최수종은 '말도 못하게 울었다'고 했다.
"한순간에 머릿속으로 지난 일들이 필름처럼 스쳐갔어요. 그전에 수술하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말을 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도 대사를 했어요. 연기하면서 소리 한번 지르면 너무 아파 주저앉았죠. 강한 진통제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도 있었어요. 조금 힘만 줘도 뼈가 저리고 아팠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최수종은 "제작진과 다른 배우들에게 미안했다"며 "어쨌든 다친 건 나였고, (그러면서) 이야기가 계획대로 안 흘러간 부분이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대왕의 꿈'은 안방극장 유일의 정통사극으로 중장년층의 사랑을 받았지만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왕의 꿈'을 잇는 정통사극은 내년 1월까지 만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KBS가 제작비와 촬영 여건 등을 이유로 대하사극을 연간 한 편만 편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극 대표 배우로 불리는 그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을 터.
"정통사극은 수치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우리가 이런 민족이고, 이런 나라였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정통사극은 있어야 합니다. '대왕의 꿈' 조연출이 학교 다닐 때 '태조 왕건'을 보면서 역사공부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게 바로 정통사극이 명맥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인 거죠."
'태조 왕건' '해신' '대조영' 등 사극에서 유독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그에게는 '사극의 신'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그러나 최수종은 "적어도 작품에 방해는 안 되니까 얻은 별명 같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항상 촬영장에 일찍 가서 먼저 준비한다는 그는 "연출자들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대로 작품을 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자신을 낮췄다.
그만의 사극 캐릭터를 만드는 비결을 물으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바로 국어사전이다.
최수종은 지금도 대본을 볼 때 사전을 보며 장음과 단음을 일일이 표시한다고 했다. 정확한 대사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대하사극을 하는데 대사를 우리가 보통 쓰는 말처럼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장음을 확실하게 길게 합니다. 잘 모르면 지금도 선배들께 여쭤봐요. 예전에는 워크맨 테이프에 선배가 하는 대사를 녹음하기도 했었어요. 숨 쉬는 부분도 일일이 표시하고 호흡도 신경 쓰죠. 대본이 지저분할 수밖에 없어요."
최수종이 사극의 매력을 제대로 느낀 것은 '태조 왕건'부터였다.
"그 당시만 해도 사극이 고려사를 다뤘다는 게 파격적이었어요. 조선을 배경으로 한 당파 사극을 넘어 우리가 과거 소강국이었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드라마였죠. 그때부터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해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캐릭터보다는 작품 전체의 메시지를 더 보게 됐어요. 또, 대하사극이 장기간 방송하고 규모가 크다 보니 제가 더 잘하고 더 낮아져야 오랫동안 작품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금도 현장에서 엑스트라 배우들께 먼저 인사합니다."
사극 배우 이미지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최수종은 사극이 들어오면 또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간 사극 속 내 모습이 달랐기 때문에 여러 작품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색다른 인물로 비칠 수 있다면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고 열정을 보였다.
최수종이 연기만큼 열정을 쏟는 것이 나눔활동이다.
그는 아내 하희라와 함께 기부와 봉사를 꾸준히 실천해왔다. 작년에는 내레이션 출연료 1억 원을 화상 환아에게 기부했고, 자선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애초 '대왕의 꿈'이 끝나면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었지만 재활 치료 일정 탓에 국내로 방향을 틀었다. 매형인 조하문 목사와 함께 이달 말 안산에서 다문화 가정 밥차 봉사에 나서기로 한 것.
최수종은 "우리가 받은 사랑만큼 돌려주는 일이 우리의 사랑을 전하는 길"이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분과 마음을 함께할 수 있어 정말 좋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다친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봐준 아내를 위해 아내의 드라마 촬영장을 찾아 간식도 돌렸다. 조만간 카메오 출연도 계획 중이란다.
차기작에서는 가볍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최수종은 "말 타는 역할은 안 하려고 한다"며 웃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12 06:1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