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왜 세상은 무(無)가 아니라 유(有)인가?"(Why is there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 at all?)
1970년대 초 풋내기 고등학생이던 짐 홀트는 동네 대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구절을 읽고 충격을 받는다.
홀트는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입문' 첫 장에 나오는 이 말을 접하고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체의 기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깊은 의문을 가진다.
기독교 신자라면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일 수도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도가 아닌 이들은 답하기가 어렵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가 고민했지만 공통된 답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후 이 명제는 평생 홀트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뉴요커'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가 된 홀트는 현존 최고의 과학철학자로 꼽히는 아돌프 그륀바움, 영국 종교철학자 리처드 스윈번, 과학사상가 데이비드 도이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 저명한 수리물리학자 로저 펜로즈 등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과 차례로 철학적 토론을 벌인다.
최근 국내 번역된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원제: Why Does The World Exist?)는 홀트의 이같은 지적인 여정을 담았다.
딱딱한 이론과 화법으로 존재론에 접근하는 방식은 지양했다. 저자의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지적인 추리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낼 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하려고 찾아가며 맞닥뜨리는 세상 풍경 등도 생동감 있게 소개한다.
수십 년 전 특정한 장소에 머물렀던 위대한 철학자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철학자나 과학자들의 태도와 버릇도 따뜻한 시선으로 전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사상가는 세 집단으로 나뉜다. 세상의 존재에 대한 이유가 있으며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낙관주의자, 존재의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 비관주의자, 존재에 대한 이유가 없으며 그 의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거부주의자다.
'거부주의자'로 분류되는 그륀바움은 저자에게 의식의 존재 문제가 어떤 수수께끼가 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유신론적 태도를 취하는 스윈번은 신의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세상의 존재 문제를 설명하려 한다.
도이치는 양자이론은 빅뱅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존재 문제에 대해서는 답해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 어떤 설명도 존재의 수수께끼를 해결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와인버그도 있다.
사실 이 책의 명제는 상당히 추상적인데다 애초부터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는 주제다. 하지만 홀트가 이끄는 대로 긴장을 풀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여러 철학 이론과 현대 과학의 세계를 두루 쉽게 살펴볼 수 있다.
21세기북스. 512쪽. 2만5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11 10:1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