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밀집 대모산 기슭..기와가마터도 나와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태종과 순조가 묻힌 헌인릉이 있으며, 세종이 처음 묻힌 영릉이 있던 서울 강남구 대모산 기슭에서 이들 왕릉 중에서도 조선 초기 왕릉의 원찰, 혹은 능침(陵寢)으로 추정되는 최고급 조선 초기 건물터가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은 SH공사가 시행하는 서울 세곡2 보금자리주택지구 건설 예정지인 강남구 수서동 540번지 일원 5천200㎡를 발굴조사한 결과, 기와 건물이 밀집한 15-16세기 무렵 조선 초기 대형 축대시설을 발견했다고 11일 말했다.
인근에서는 이들 건물에 사용한 기와를 생산 공급하던 기와가마터 4기가 함께 발견됐다.
조사 결과 대모산 서쪽 가지능선 기슭에서는 남북방향을 따라 길이 68m 이상에 이르는 대형 석축이 드러났다. 이 석축 단 위에서는 현재까지 건물터 6개 동과 이들 건물터 중앙을 차지한 박석(납작한 돌)과 벽돌을 깐 마당, 이들과 관련된 아궁이와 배수로 시설 등이 밀집한 상태로 발견됐다.
나아가 이번에 조사한 구역 뒤편 산기슭 위에서는 또 다른 석축시설이 확인되는가 하면 그 뒤에는 건물터 등이 있던 흔적으로 볼만한 평탄 대지가 있고, 출토 유물 또한 왕릉에서나 쓸 법한 최고급 기와 등의 건축 자재를 쓴 점 등으로 보아 애초 이 구역에 들어선 건물터는 대단한 권위를 자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이들 건물은 서쪽 방향을 향한다.
더불어 이들 건물터 인근 지점에서는 기와가마터 4곳과 관련 기와 폐기장 3곳, 그리고 묘역으로 추정되는 시설 등이 확인됐다.
기와가마터 |
기와가마에서 수습한 기와 중에서는 범어 '옴'을 새긴 수막새가 온전한 상태로 수습됐다. 이 기와를 포함해 가마터 출토 기와와 축대 위 건물터 출토 기와는 종류가 거의 겹치는 것으로 보아 이들 건물터에 공급한 기와를 이곳에서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검토 회의에 참석한 심정보 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 위원장은 "청자나 백자 등의 출토유물로 보아 조선전기 중에서도 상당히 빠른 시기에 속하며, 그 격 또한 상당히 높아 대모산 일대에 있는 태종의 헌릉이라든가, 이곳에 있다가 여주로 옮겨간 세종의 영릉과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심 위원장은 나아가 "기와를 생산하던 시설과 이에서 생산한 기와를 실제로 쓴 건물터, 그리고 기와를 폐기한 곳까지 삼박자가 완벽히 갖춘 이런 유적은 유례가 매우 드물다"면서 "더욱 철저한 발굴조사와 관련 문헌조사를 통해 이 유적의 성격을 구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옴'자를 넣은 수막새 |
이번에 확인한 유적은 시대로 볼 때 조선전기 어느 왕의 능묘(陵墓)와 관련되는 시설임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특히 지금까지 그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는 세종의 처음 묻힌 무덤인 영릉(英陵), 혹은 그의 아버지 태종의 헌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비상한 주목을 요한다.
나아가 조사구역 바깥에 위치한 관련 석축과 건물터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검토회의 의견도 나왔다.
이번에 확인한 유적 중에서도 석축과 건물터는 현장보존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이며, 가마터 관련 시설은 추후 정밀조사를 끝낸 뒤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출토기와류 |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11 15:0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