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5일만에 300만 관객 눈앞.."대중성 보여줘 만족"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흥행'이라는 단어는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관객들의 큰 주목을 받고 흥행이 되니까 아직은 잘 와 닿지가 않아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연출한 장철수(39) 감독은 '흥행 감독'이 된 소감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수줍어하며 이렇게 입을 뗐다.
3년 전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전작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로 16만 관객을 모은 데 비하면 본격 상업영화에 도전한 첫 작품으로 5일 만에 300만 관객을 눈앞에 둔 성취는 얼떨떨할 만도 하다.
'은밀하게…'는 지난 5일 개봉하자마자 첫날 49만8천 명, 둘째날 91만9천 명을 모으며 한국영화 사상 개봉일 최다관객 기록, 일일 최다 관객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고 최단기간 100만(36시간 만), 200만(72시간 만) 관객 돌파 기록까지 쓰면서 신들린 듯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주연배우인 김수현의 티켓파워와 웹툰 원작의 팬덤이 맞물린 측면이 크지만, 두 가지 요소를 결합시켜 상업영화로 빚어낸 것은 온전히 감독의 몫이다. 반대로 이렇게 좋은 조합을 가지고 실패했을 경우 져야 하는 책임 또한 온전히 감독의 몫이기에 그간 장철수 감독의 맘 고생은 적지 않았을 터.
지난 7일 압구정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우선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워낙 기대치가 높아서 웬만큼 잘 되지 않으면 잘했다는 소리 못 듣겠다 싶었는데, 손익분기점(220만 관객)을 빨리 넘겼다는 게 다행이에요. 최소한의 의무는 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큰 부담을 안고도 그가 이 작품에 뛰어든 건 원작이 지닌 주제의식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드는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이 그리는 청춘들의 비극이 이 시점에 꼭 다뤄야할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옛날에 읽었던 최인훈 소설 '광장'에서 전쟁 포로가 남으로도 북으로도 가지 못하고 제3국으로 가다가 배 위에서 뛰어내리잖아요. 6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생각할 수 있게 하려면 대중성의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이 웹툰은 대중적인 요소도 갖추고 있으면서 문제의 핵심도 잘 짚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꼭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꽉 짜인 웹툰의 틀 안에서 어떻게 그림들을 자르고 이어붙여 두 시간 분량의 드라마로 만들어내느냐는 성패의 관건이었다.
"웹툰을 본 사람들은 머릿속에 그림들을 비슷하게 넣고 있거든요. 거기서 다르게 갈 것이냐, 비슷하게 갈 것이냐 계속 선택에 놓이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걸 조절을 잘 해야 하는데, 어떨 땐 (원작과) 같게 가고 싶어도 그림처럼 똑같이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웹툰에서의 첫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죠. 저 혼자서는 그 느낌을 잃어버릴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느낌은 어떤지 스태프와 배우들의 느낌을 많이 물어봤고 제가 느낀 직관과 많은 사람들이 느낀 공통된 느낌을 잘 파악해서 끌어가려고 했어요."
무엇보다 주연배우 김수현의 재능을 최대치로 끌어낸 것은 영화의 큰 성공 요인이다.
"사실 저도 그런 의구심이 있었거든요. 김수현이란 배우가 '해품달'이란 드라마로 운이 좋아서 스타가 된 건지, 아니면 진짜 실력이 있는 건지. 그건 배우가 몇 작품을 해 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영화라는 게 중요한 시험대인 것 같아요. 영화에서는 신인이 쉽게 주인공을 하기도 힘들뿐더러 우연을 기대하기 힘들고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만나보니 이 배우에게는 기성 배우들에게는 못 느꼈던 독특한 점들이 있더라고요. 굉장히 캐릭터를 쪼개서 분석하고 현미경으로 세포를 보듯이 그 캐릭터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 깨알같이 파악하려고 하더라고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고요. 되게 머리가 좋아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남들과 다른 지점에 서려고 하는 의욕도 크고, 적당히 만족하진 않더라고요. 스스로 채찍질 하면서 가는 걸 보면 앞으로도 잘 할 것 같아요."
홍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김기덕 감독 밑에서 영화에 입문해 '사마리아'(2004)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해안선'(2002)의 조연출을 한 뒤 데뷔작인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로 국내 유수 영화제의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던 그가 차기작으로 상업영화 '은밀하게…'를 택했을 때 다소 의외라는 시선도 있었다.
"사람들이 저에 대해 '김기덕 같은 영화를 할 거다'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걸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대중적인 영화를 하려고 했죠. 귀여니 소설 '내 남자친구에게'를 원작으로 영화를 준비했어요. 우선 대중성을 확보한 다음에 내 색깔을 찾아가려고 했죠. 그런데 당시(2007년) 영화산업이 침체되고 신인감독에게 절대 안 맡기는 분위기가 팽배해서 투자를 못 받았어요. 결국 저예산밖에 길이 없었고 절대 묻히는 영화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김복남…'을 죽기살기로 독하게 만들었죠."
하지만, '김복남…'의 강렬한 색깔을 벗는 것 역시 과제였다고 했다.
"두 번째 작품에서 대중적인 요소를 보여주지 않으면 계속 똑같은 자리에만 머무를 것 같았죠. 그래서 저라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투자할 가치, 배우들에게 '같이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려고 했죠. 통과해야할 관문이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생각을 깨면서 놀라움과 재미를 주는 감독이 되려고 합니다. 제 목표는 거장이나 기성 감독처럼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신인감독과 견줘도 신선함이 떨어지지 않는 감독이 되는 거예요."
이번 영화에 평단의 쓴소리가 나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는 이 영화가 실패작으로 남을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평론가 별점이나 관객수가 기준이 아니라 작품의 생명력이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나왔든 생명을 유지하면서 자기 수명만큼 살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자기 생명력을 갖고 오래 살 것 같아요. 대중적인 영화로 풀어낼 수 있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어요. 감독으로서 아직은 시작하는 단계고 앞으로 더 올라갈 데가 많으니까요."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09 08:0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