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 한팩)가 매년 이맘때 벌이는 솔로춤 공연 프로그램 '한팩 솔로이스트'는 안무가와 무용수의 조합이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지난 1일까지 이틀간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서 치러진 '2013 한팩 솔로이스트' 첫 번째 팀 공연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에 선보인 네 편의 신작 중 '초이스'는 현대무용 안무가 김재덕이 춤을 만들고 한국무용가 김혜림이 무대에서 춤을 춘 사례. 조합이 주는 흥미로움 만큼이나 산뜻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제목이 '선택'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작품은 아니리가 있고 그 사설의 내용에 따라 김혜림이 춤사위를 하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아니리'는 판소리에서 창을 하는 중간마다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엮어 나가는 사설. 소리꾼 윤석기가 읊어내는 사설이 내용이 알쏭달쏭하면서도 해학적이다.
"손가락 10개는 10개요? 아픔이 10개면 10 아픔이요?", 또는 "한복 입은 벤츠와 버선 신은 BMW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소이다. '닫아, 머리', '닫아, 머리'".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선문답 같은 소리꾼의 사설 속에 김혜림은 그 내용에 따라 초반에는 한정된 공간에서 마임 같은 동작을 했다가 움직임의 공간을 넓혀가며 춤사위의 크기도 확대해 나간다. 중반에는 파란빛을 띠는 여러 갈래의 길 조명 중앙에서 "밑으로 내려갔다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원래의 선택지면 밑으로 내려갔다가 옆으로 꺾는 것은 어떻사옵니까"라는 역시 기이한 내용의 아니리에 맞춰 춤을 춘다.
후반에는 무대 뒤로 노랑과 빨강의 원형 원색 조명이 뿌려지고, 이어 춤추는 김혜림의 그림자들이 생겨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때 나오는 사설의 핵심 내용은 "한복 입은 벤츠와 버선 신은 BMW". 유연하면서도 때로는 단호하게 두 팔을 허공에 떨쳐내며 에너지를 뿜어내는 김혜림의 춤사위가 인상적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인상은 '불균형 속의 균형'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국악 타악기와 현악기의 미니멀한 연주음악이 흡사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흥미로웠다.
또 하나 톡톡 튀는 작품은 신예 현대무용 안무가 김보람이 춤사위를 만들고 국립발레단 소속 최고의 발레 스타 김지영이 발레와 현대무용의 느낌을 섞어 춤을 춘 '혼돈의 시작'. 매우 이질적인 세 곡의 배경음악에 맞춰 김지영이 춤을 춘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처음은 피아노곡인 슈만의 '트로메라이', 두 번째는 테크노음악인 프랑스 듀오 다프트펑크의 '테크노로직', 세 번째는 판소리 '심청가'의 한 대목이다. 이런 음악에 맞춰 발레리나가 춤을 추는 것 자체가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심청가'의 '뚜루루루…" 소리에 맞춰 김지영이 새가 두 다리를 이용해 빠른 속도로 이동하듯 총총걸음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익살맞기까지 하다.
'테크노로직'의 선율에 맞춰 만들어진 김지영의 몸동작에도 고급스러운 코믹함이 있었다.
김보람 안무의 '혼돈의 시작' 중 한 장면. 발레리나 김지영과 안무가 김보람. (사진=한국공연예술센터 제공, 촬영=이지락) |
김보람 안무 작품이 늘 그렇듯 김지영도 선글라스를 쓰고 춤을 췄다. 김보람은 다양한 정서를 눈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제대로 표현해 내도록 하기 위해 무용수들이 수경이나 선글라스 같은 것으로 눈을 가리도록 한다. 김보람은 이번 작품에 특별출연해 연두색 페인트를 김지영의 옷에 칠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김지영이라는 스타의 춤이 주는 재미, 또 관심 가는 주제와 작품 구성에도 다소의 아쉬움은 있다. 김보람의 예전 작품들에서 보이는 특유의 몸짓들이 자주 반복되는 것이 신선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초이스'와 '혼돈의 시작'은 서로 독립적인 작품임에도 공교롭게 작품 속에 판소리가 배경음악으로 들어오고, 또 혼돈의 이미지가 있다는 공통점이 발견돼 흥미로웠다.
'2013 한팩 솔로이스트' 첫 번째 팀 공연 때는 이 두 작품 외에도 차세대 안무가 밝넝쿨이 사운드아티스트 권병준과 공동작업해 만들고 밝넝쿨이 춤을 춘 '파이팅 룸'과 브라질 출신의 안무가로 현재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지셀라 로샤가 작품을 만들고 중견 안무가 겸 무용수인 김성용이 춤을 춘 '엄마와 낯선 아들'이 무대에 올려졌다.
한편 두 번째 팀 공연은 오는 7일과 8일 양일간 같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 위에 올려진다.
'스위프트 시프트'는 독일 안무가 하이디 비어탈러가 안무하고 김건중이 출연하는 작품이다. 또 '출입구 또는 몽환'이라는 작품은 벨기에 안무가 스테프 레누어스가 만든 작품으로 허성임이 무용수로 출연한다. 이 작품은 19세 이상의 관객만 볼 수 있다. 벨기에 안무가 프랭크 샤티에가 만들고 정훈목이 춤을 추는 '존 막'은 15세 이상 관람 가능 작품이다.
공연문의는 한국공연예술센터 ☎02-3668-0007.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03 06:1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