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표 극작가 겸 연극 연출가..희곡집 발간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조용한 연극', '이지적인 연극', '입말 연극'.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51)의 작품을 설명하는 말이다.
떠들썩하고 밝은 느낌을 추구하는 일본 특유의 앙그라(언더그라운드) 연극에 반기를 들고, 담담하고 사색적인 무대 연출로 1990년대 일본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고 평가되는 예술가다.
한국 연극계에도 꾸준히 활동하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그가 국내에서 희곡집을 발간했다. 그의 연극론을 담은 이론서는 소개된 적이 있지만, 희곡집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히라타는 29일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인에게 필요한 예술은 과격한 자극이 차단된 공간에서 자신을 대면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자신의 '조용한 연극'을 소개했다.
"지금 도시민들은 지나친 자극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로 피로를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과잉된 자극과 정보 속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 때, 관객에게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는 게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를 '도시의 고독함'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연극 철학이 깃든 선집에는 총 7편의 희곡이 실렸다.
1권에는 고(故) 박광정 연출가가 번안해 올린 '서울노트'의 원작 희곡 '도쿄노트'를 비롯해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가와 손잡고 만든 '잠 못드는 밤은 없다', 한국에서는 아직 상연되지 않은 '모험왕'(1996년 일본 초연)이 담겼다. 2권에는 과학 하는 마음 3부작으로 알려진 '과학 하는 마음'·'북방한계선의 원숭이'·'발칸 동물원'과 '이번 생은 참기 힘들어'가 포함됐다.
그의 작품이 국내에서 주목되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초반부터다.
특히 현대 도시인의 삶을 서늘한 느낌으로 풀어낸 번안극 '서울노트'는 재공연을 거듭하며 국내 연극계의 일류(日流)를 이끌었다.
히라타는 1990년대 버블경제의 붕괴로 삶의 좌표를 잃은 일본인의 심리와 2000년대 초반 한국인의 감성이 만나는 지점이 있어 작품에 공감의 원동력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
- 희곡집 낸 日 연극인 히라타 오리자
-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조용한 연극'으로 유명한 일본 대표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51)씨가 희곡집을 발간했다. 사진은 29일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희곡집에 대해 설명하는 히라타씨 모습. 2013.5.29 <<문화부 기사 참고>>
- -----------------------------------------------------------------------------------------------------------------------
특유의 담담하고 쓸쓸한 느낌의 연출법도 흥미롭지만, 무대 위에서 발화되는 '생말'도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기존 잘 만들고 다듬은 문어체의 연극 언어를 일상에서 쓰이는 입말로 바꾸는 작업을 시도한 것.
이 같은 무대언어 연구는 1984-1985년 연세대에서 보낸 유학 기간의 영향이었다고 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가장 큰 특징은 어순이 자유롭다는 데 있습니다. 또 필요에 따라선 명사를 반복하는 것을 기피하지 않죠. 그래서 강조하는 말을 앞으로 빼서 말하거나 여러 번 반복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양국 말을 비교하며 체득한 이러한 언어의 특징은 그의 희곡언어에 그대로 반영됐다.
"스무 살 때부터 희곡을 썼고, 스물 두살 때부터 1년간 때 교환학생으로 한국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때는 이러한 발견이 어디에 쓰일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졸업 후 연극을 계속 하면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평소의 일상 언어에 가까운 연극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됐습니다."
20대 청년 시절 한국에 건너와 이곳 문화를 배우고, 이후 한·일 양국의 근현대사를 작품에 녹여 온 그는 최근 일부 일본 정치인의 역사 왜곡 발언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된 데에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오사카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특히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위안부 망언'에 대해 "바보 같은 발언을 하는 바람에 그동안 애쓴 것이 허무하게 됐다"며 "특히 한국인에게는 면목없게 돼 버렸다"고 유감을 표했다.
이어 "우리는 예술인이자 연극인으로, 그리고 세계 시민으로서 우호를 다지고 우정을 나누는 것을 계속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교편을 잡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친 그는 앞으로 두 권의 희곡선집을 더 발간할 예정이다.
1909년 경성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일본인 가족의 하루를 그린 '서울시민'(1989 초연)을 시작으로 1919년, 1929년, 1939년 등으로 시대적 배경을 바꿔 선보인 서울시민 5부작을 비롯해 '혁명일기', 'S고원으로부터', '남쪽나라로' 등을 담은 책이다.
"내년이면 제가 유학생으로 한국에 온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땐 이런 책을 낸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어요. 지난 10여 년 제 작품이 한국에서 사랑받게 돼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성기웅 옮김, 현암사, 492-540쪽, 각 권 1만8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29 18:2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