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삼성전자[005930]가 22일 팬택에 53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결정한 것은 현상 유지를 통한 '윈-윈' 전략으로 해석된다.
국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업계가 삼성전자와 LG전자[066570], 팬택의 3개사로 구성된 상황에서 1위 업체가 3위 업체에 지분 투자를 결정한 것은 얼핏 보면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그러나 1위인 삼성전자는 3위 팬택을 도와줌으로써 2위인 LG전자를 견제하고, '3개 국산 업체'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독점 이슈를 예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양사가 스마트폰 완제품 시장에서는 경쟁사이지만 부품 시장에서는 협력 관계라는 점도 있다. 양사는 이를 고려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팬택의 삼성 계열사 부품 구매는 지난해 한해만 따져도 삼성전자에서 1천822억원, 삼성전기[009150]에서 357억원, 삼성SDI[006400]에서 174억원 등 2천353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팬택의 매출액 2조9천820억원의 7.9%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11년 이후 최근 5년간 부품 구매 실적을 합하면 8천116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팬택의 지분을 사들이면서도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겠다는 것도 '3개 국산 스마트폰 업체 체제'를 유지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로 팬택의 주식 5천300만 주를 주당 1천원에 사기로 했다.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삼성은 팬택 지분 10.03%를 보유해 퀄컴(11.96%)과 산업은행(11.81%)에 이어 3대 주주가 되지만, 퀄컴과 마찬가지로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다만 삼성이 팬택의 주요 주주가 됨에 따라 제품 분야에서의 경쟁도 누그러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팬택은 지난해 스마트폰 베가R3를 내면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바로 맞은편에서 출시 행사를 여는 등 정면으로 삼성을 겨냥했다.
광고에서도 삼성 제품을 겨냥해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없고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제품보다 베가R3를 구입하라는 메시지를 넣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팬택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이런 식으로 대립각을 세우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팬택 관계자는 "부품 분야에서는 앞으로 삼성과 협력 관계가 더 공고해지겠지만 완제품 스마트폰에서는 오히려 더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번 결정을 통해 브랜드 마케팅과 연구개발(R&D)를 위한 투자 유치가 절실했던 팬택은 다소간 '숨통'이 트이게 됐다.
팬택은 박병엽 부회장이 회사를 이준우 부사장에게 맡기고 직접 투자유치에 나설 정도로 투자 유치가 중요했던 터다. 삼성의 지분 투자로 '실리'를 얻었다.
또 삼성전자는 업계 1위 사업자로서 3위 사업자의 위기를 도와주고 브랜드 쏠림 현상을 막는 데 스스로 나섰다는 '명분'을 챙기면서 부품 분야의 장기 고객도 확보하게 됐다.
박병엽 부회장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력, 상품력을 갖고 있는 팬택을 삼성이 정보통신기술(ICT) 진흥을 위한 상생과 공존을 위한 틀로 본 것 같다"며 "이번 투자는 삼성이 엔저 등 경제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전체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책임있는 노력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본다"고 치켜세운 대목은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팬택은 지난 1월에도 퀄컴으로부터 261억5천만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이끌어 낸 바 있다.
당시 퀄컴은 팬택 주식 17억6천만여 주를 주당 500원에 샀으나 지난 4월 시행한 팬택의 4대 1 무상감자로 인해 주식 수가 4분의 1로 줄었다.
삼성전자는 무상감자 이후 주식을 주당 1천원에 인수했기 때문에 퀄컴과 비교하면 주당 인수 가격이 절반인 셈이다.
팬택은 감자를 결정할 당시 언론에 "외부로부터의 투자 유치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감자를 하면 자본금이 줄어들고, 자본금이 줄어들면 신규 투자자가 같은 금액을 투자하고도 더 많은 지분비율을 보유할 수 있어 투자유치가 쉬워진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22 16:2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