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업의 연행일기, 홍대용의 을병연행록,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현장에서 읽다
‘압록강에서 열하까지 연행노정 답사기’는 조선시대 사행의 연행노정에 매료되어 여러 해에 걸쳐 전 구간을 완주한 책이며, 연행록의 3대 걸작인 연행일기, 을병연행록, 열하일기를 중심으로 각각의 특징을 살펴본 답사기이다.
연행록, 연행일기, 연행노정 등의 뜻은 조선시대 동지사나 사은사 등의 사행단이 한양에서 황제가 있는 연경(지금의 북경)에 다녀오면서 작성한 기록물이나 노정을 말한다.
300여 명의 규모에 달하는 조선시대 사행단에는 정사와 부사 및 서장관 삼사는 자제를 동행할 수 있었는데, 연행록의 저자들은 대개 자제군관 명목으로 다녀온 사람들이다. 박지원은 삼종형 박명원이 사은정사로 갈 때 동행했고, 홍대용은 작은아버지 홍억이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갈 때, 김창업은 형 김창집이 동지정사로 갈 때 동행했다.
자제군관은 특별한 임무가 없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활동하며 견문을 넓힐 수 있었으며, 신문물을 접하거나 중국의 지식인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남긴 기록에는 당시의 한·중관계를 비롯해서 지식인들의 의식구조와 일반인들의 생활풍속에 이르기까지 한·중 두 나라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담겨있고, 조선시대 사행단의 연행은 외교목적 외에도 새로운 문물의 견학과 유입에 중요한 경로였기에 한·중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한·중수교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연행노정을 답사한 기록은 몇 건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쉽게도 그마저 다 중간에서 멈추거나 많은 구간을 건너뛰며 산발적으로 답사하는 데 그쳤다.
이 책은 조선의 사행이 걸어간 길을 완주한 최초의 기록이다. 비록 몇 곳의 미답지점을 숙제로 남겨놓고는 있으나 압록강에서 열하까지 완주한 최초의 기록이다.
특히 홍대용의 연행 중에 한·중 두 나라 지식인들의 역사적 교류가 이루어진 북경의 간징후통을 최초로 밝혀내고, ‘열하일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이 작성된 열하문묘의 명륜당 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또한, 연행록 자체의 문헌적 측면에만 치중했던 기존의 답사기와 달리 연행현장의 흥망성쇠에 비추어 현대중국의 실상을 관찰했다. 특히 사찰과 도관 등에서 전통 중국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폈다.
이 책은 18세기 연행록의 3대 걸작인 김창업(1712년), 홍대용(1765년), 박지원(1780년)의 기록을 중심으로 답사를 하면서 그들 각자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비교 정리했다.
같은 건물이나 풍습을 접했다고 하더라도 각 기록자의 미묘한 차이를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으로 돌아온 뒤의 행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국여행이 자유로운 시대가 되고, 최근 한·중 두 나라 간에 인문교류가 강조되고, 연행록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보근 씨의 ‘압록강에서 열하까지 연행노정 답사기’가 한·중 연결고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를 기대한다.
이 책이 연행노정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길을 안내하는 데, 관심 있는 연구자에게는 더욱 알차고 다양한 내용의 답사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