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2006년 미국의 네살짜리 남자 아이가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했다가 나흘 만에 숨졌다.
사망 원인은 납중독이었다. 리복 운동화를 살 때 선물로 받은 작은 펜던트를 삼킨 탓이었다.
중국산인 이 펜던트는 납 함량이 무려 99%. 리복은 공개 사과하고 벌금 100만 달러를 냈다.
2000년에는 미국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학교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졌다.
전 과목에서 A를 받을 정도로 재능있던 이 아이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부터 성격이 달라졌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잠을 제대로 못 이루자 부모는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항우울제인 팍실에 이어 졸로프트를 처방했다. 아이에게 환각과 흥분이 찾아왔고,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자살을 택했다.
당시 의사들은 "팍실과 졸로프트가 특효약이며 아이에게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제약회사는 이 약이 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후 미디어가 나서는 등 여론이 들끓었고 관련 약에는 경고 표시가 붙게 됐다.
조엘 바칸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신간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원제: Childhood Under Siege)에서 아이들을 농락하며 막대한 이윤을 올리는 기업의 부도덕한 경제활동을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 어린이를 겨냥한 산업 시장의 규모는 1조 달러에 이른다. 외부 자극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거대 기업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요즘 아이의 몸에서는 부모보다 7배가 많은 화학물질이 검출된다고 주장한다.
무려 8만6천여 종의 산업용 화학물질 가운데 안전검사를 마친 물질은 200종에 불과한 게 현실이라고 덧붙인다. 그나마 '안전하다'는 의미도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부작용이 있다고 증명된 수치만 넘지 않는 정도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은 화학물질, 약물오용 뿐만 아니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미디어 콘텐츠에도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바깥에서 뛰어놀거나 창의적인 놀이를 하기보다는 휴대전화나 아이패드 화면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저자는 책에서 방송국과 연방통신위원회 간의 광고 규제 개설 및 철폐의 역사, 지난 15년간 제약회사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 목록, 호르몬 작용 교란과 다양한 기형을 유발하는 물질을 포함한 용품 목록, 중독성 강한 비디오 게임 목록 등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그는 "어린이 산업에서는 사후 조치가 아니라 사전 예방을 전제로 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여러 사례와 통계를 풍부하게 활용한 덕분에 저자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미국 현실에 초점을 맞춘 책이지만 국내 부모에게도 의미 있는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창신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356쪽. 1만4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6 10:2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