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의 '시간의 지도-빅 히스토리' 출간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인류 역사를 다룬 책은 대부분 역사 서술의 시점을 호모 사피엔스의 탄생 이후로 잡는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시각은 온당할까?
우주의 역사를 하루로 환산하면 인간이 지구에 등장한 역사는 1초에도 못 미친다. 24시간 중에서 23시간 59분 59초를 생략한 채 1초도 안 되는 시간을 놓고서 우리는 '역사'라고 이름을 붙여온 것이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아쉽다. 우리는 인간의 역사를 서술할 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비중 있게 다뤄왔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인류 역사에서 과학기술과 인간의 상호 작용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밝힌다.
이처럼 '스몰 히스토리'에 반기를 들면서 '모든 것의 역사'를 말하는 새로운 역사 방법론이 바로 '빅 히스토리'다.
우리 말로 '거대사'로 번역되는 빅 히스토리는 우주론, 지구물리학, 생물학, 역사학 등의 다양한 학문 분야를 함께 묶어 137억년 전의 빅뱅부터 인류의 현재까지를 통일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새로운 지식 분야다.
호주 맥쿼리대 교수인 데이비드 크리스천이 쓴 '시간의 지도-빅 히스토리'는 새로운 역사 방법론인 '빅 히스토리' 입문서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별과 도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기 우주에서는 중력이 원자구름을 모아 별과 은하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 장에서 흩어져 있던 농민들의 공동체가 일종의 사회적 중력을 통해서 어떻게 도시와 국가로 발전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더 크고 더 조밀한 공동체로 모이게 되면서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접촉이 늘어났고 사회적 압력이 높아져 결국 별의 형성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도 새로운 구조가 갑자기 등장했고 그에 따라 새로운 차원의 복잡성이 나타났다. 별과 마찬가지로 도시와 국가도 작은 대상들을 자신들의 중력장 안에서 재구성하고, 그것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했다."(373쪽)
그렇다면 빅 히스토리는 왜 필요할까?
21세기에 인류가 처한 전 지구적 문제들은 하나의 학문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인류의 모든 지혜를 동원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오존층 파괴, 물 부족, 환경오염 등은 어느 한 나라나 지역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만약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특정한 지역의 이해관계나 특정한 정치인, 기업인들의 이해관계가 개입한다면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이런 좁은 시각을 넘어서려면 인간이 지구 생물권의 일부이며, 지구가 태양계 일부이고, 태양계는 우주 일부라는 거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그런 시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가 운명공동체이며,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에 인류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빅 히스토리는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통해 우주의 전 역사를 살핌으로써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다양한 시간의 척도 안에서 볼 수 있게 해주며, 인류가 우주의 시작부터 자연과 서로 어떻게 연관돼 발전해 왔는지를 통합적 시각에서 보게 함으로써 공동의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한다.
저자인 크리스천은 빅뱅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거대한 역사를 포괄하는 빅 히스토리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으며, 20여 년 동안 호주와 미국의 대학교에서 빅 히스토리를 강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후원을 받아 미국 고등학생들에게 빅 히스토리를 가르칠 수 있는 온라인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책으로 2004년에 세계사학회로부터 최고 도서상을 받았다.
심산. 이근영 옮김. 848쪽. 3만8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21 10:5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