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1995년 유럽 횡단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 청년 '제시'(에단 호크 분)와 프랑스 여자 '셀린느'(줄리 델피). 묘한 끌림과 설렘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함께 내린 두 남녀는 짧지만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낸다.
9년이 지난 2004년 프랑스 파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는 책 홍보차 파리에 왔다가 셀린느와 운명처럼 재회한다. 30대가 된 두 남녀는 6개월 뒤 다시 만나기로 했지만 지켜지지 않은 9년 전 약속을 떠올리며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공유한다.
그리고 또 다시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첫 만남 당시 풋풋한 20대였던 제시와 셀린느는 어느새 40대가 됐고, 낭만적이었던 이들의 사랑은 이제 현실이 됐다.
영화 '비포 미드나잇'은 '비포 선라이즈'(1995)와 '비포 선셋'(2004)에서 이어진 '비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전편에 이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주연을 맡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나이 든 제시와 셀린느의 사랑을 스크린에 담았다.
9년 전 제시의 미국행 비행기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셀린느의 집에서 사랑을 재확인했던 두 남녀는 어느새 쌍둥이 딸을 둔 중년의 부부가 됐다.
이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헨리'와 그리스에서 함께 여름휴가를 보낸 뒤 미국행 비행기에 태워 보낸 제시는 헨리가 야구공을 제대로 던지는 법을 모르는 것도 자기 탓이라고 자책한다.
제시는 헨리를 걱정하며 미국 시카고에서 살고 싶다고 지나가듯 얘기하지만 이를 자신의 일을 포기하라는 뜻으로 오해한 셀린느는 발끈한다.
6주간의 그리스 휴가를 마치고 곧 파리로 돌아갈 이들 부부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도록 친구들은 호텔을 예약해주지만, 아들 헨리의 전화에서 시작한 사소한 말다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영화는 전작처럼 차를 타고 공항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어느 한적한 골목길과 유적지에서, 호텔방에서 쉴새 없이 이어지는 두 주인공의 긴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작과 달리 그리스 친구들과 소설, 남녀간 차이 등에 대해 나누는 대화도 상당 부분 포함됐다.
특히 이전에는 두 남녀가 설렘과 애틋함 속에 사랑, 삶과 죽음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공감대를 넓혀갔다면 이번엔 세월의 흐름을 반영하듯 아들 양육과 전처와의 문제 등 보다 현실적인 대화가 오간다.
제시와 셀린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부부처럼 사소한 이유로 투닥거리다 곧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화해하는 일을 반복한다.
셀린느는 끊임없이 제시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잤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제시는 "욕하고 징징대는 에너지의 8분의 1만 자신을 위해 써보라"며 셀린느를 달랜다.
'기차에서 만난 다정하고 로맨틱한 남자' 대신 면도도 제대로 안 하는 40대 아저씨가 됐지만 "난 내 인생을 통째로 줬어"라며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주는 제시는 변함없이 매력적이다.
'뚱뚱하고 머리도 빠진' 셀린느는 전편보다 예민하고 툭하면 화를 내지만 "지금 기차에서 날 만난다면 같이 내리자고 할 거야?"라고 묻거나 '백치 미인'의 말투를 흉내내는 모습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완벽하진 않지만 이게 실제야"라는 극 중 제시의 대사처럼 '비포 미드나잇'은 세월만큼 성숙해진 두 남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물론 18년간 '비포 시리즈'와 함께 나이 들며 온전히 제시와 셀린느가 된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여서 가능한 일인 듯하다.
영화는 빈('비포 선라이즈')과 파리('비포 선셋')에 이어 그리스 남부 한 해변 마을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한적한 골목길과 따사로운 석양이 인상적이다.
22일 개봉. 상영시간 108분. 청소년 관람불가.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9 06:4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