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교수, 신간 '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국전쟁의 기원은 명쾌하지 않다. 개전 당시부터 현재까지 남침설·북침설·남침 유도설 등 논란이 있으며 학계에선 남침 유도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남침 유도설의 근거는 '애치슨 라인'이다. 1950년 1월 미국의 국무장관이던 딘 애치슨은 아시아 방어 전략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이 "필리핀∼오키나와∼일본∼알류산열도∼알래스카"라고 발표했다.
남침 유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를 제외함으로써 북한의 오판을 불러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새로운 자료가 발굴됐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박태균 교수는 신간 '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한국현대사의 그때 오늘'에서 옛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이 옛 체코슬로바키아의 클레멘트 고트발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편지에는 "미국 정부가 계속해서 극동에 묶여 있고, 한국의 해방을 위한 투쟁과 독립을 위한 싸움에 중국이 끼어들어 간다면, 이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미국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같이 거대한 군대를 갖고 있는 (국가에)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스스로 힘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둘째 단기적으로 볼 때 미국이 여기에 묶여 있다면 제3차 세계대전은 무기한 연기될 테고, 유럽은 사회주의를 공고화하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중략) 세계적 차원의 힘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렇습니다"(187쪽)라고 쓰여 있다.
최고비밀문서로 분류된 이 편지에서 스탈린은 고트발트에게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면 미국의 관심이 아시아로 기울어질 것이므로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럽에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뿐 아니라 중국의 개입을 통해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패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스탈린이 이 편지를 쓴 시점은 1950년 8월 27일이다. 인천상륙작전 이전이며,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전이었다.
박 교수는 "만약 스탈린의 이러한 언급이 모두 사실이라면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 대한 연구는 다시 시작돼야 한다"면서 "소련이 미국을 아시아로 유도해 벌어진 전쟁이 곧 한국전쟁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한국전쟁에 대해 미국에 의한 '남침 유도설'이 아니라 소련에 의한 '미국 개입 유도설'이 제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 교수는 이 책에서 중국 주재 동독대사관의 보고서를 통해 1975년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한 것과 관련해 제2의 한국전쟁을 계획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밝혔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는 무단으로 반공 포로를 석방한 이승만을 제거할 수도 있다는 미국의 언급도 소개한다.
이 책은 한국현대사에서 결정적인 사건이었음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거나 잘못 알려진 사건들을 월별로 정리해 사건의 발생 배경과 전개 과정, 의의, 그것을 통해 현재 시점에서 되짚어야 할 점들을 정리했다.
저자인 박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1956∼1964년 한국경제개발계획의 성립 과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2007년 1년 동안 하버드대에서 한국현대사를 강의했다.
저서로는 '조봉암 연구', '한국전쟁',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원형과 변용' 등이 있다.
역사비평사. 408쪽. 1만6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4 17:5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