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레베헤-임선혜 내달 국내서 한 무대
"웅장함과는 다른 매력의 '레퀴엠' 들려 드릴 것"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고(古)음악계의 디바' 소프라노 임선혜(37) 씨의 14년 전 유럽 데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된다.
그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칼스루에 국립 음대에서 유학하던 1999년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고음악 거장 필립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 c단조 미사 무대에 대타로 설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었다.
그는 곧바로 "물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다 해본 곡"이라며 당당히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나 이것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이 겁없는 스물세 살의 소프라노는 새벽 기차를 타고 벨기에 브뤼셀 공연장으로 달려가는 7시간 동안 악보를 외웠다. 리허설은 연주회 당일 20분간 가진 게 전부였다.
그렇게 치른 유럽 데뷔 무대. 헤레베헤는 그에게 "황금 목소리"라고 극찬했고, 열흘 뒤에 잡혔던 다른 공연에도 기존 섭외를 취소하고 그를 출연시켰다.
그는 헤레베헤와의 데뷔 무대라는 빛나는 '명함' 덕분에 이후 르네 야콥스, 윌리엄 크리스티, 파비오 비온디 등 다른 고음악 거장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임선혜는 최근 가진 인터뷰에서 "유럽에서의 첫 공연이 바로 헤레베헤와의 공연이었다고 하면 누구나 '얼마나 운이 좋았던 거냐'며 혀를 내두른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온 앳된 소프라노라는 점이 명지휘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인지, 아니면 그토록 유명한 지휘자 앞에서 겁먹지 않았던 맹랑함과 당당함이 도움됐던 것인지, 혹은 특정 스타일에 젖지 않은 음성과 신선함이 가산점을 얻은 것인지 모르겠어요. 저도 헤레베헤에게 물어보고 싶네요.(웃음)"
어느덧 고음악계 프리마돈나로 우뚝 선 임선혜와 무명 시절 그의 가능성을 처음 발견한 거장 헤레베헤가 함께 서는 무대를 다음 달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등을 이끌고 내한하는 헤레베헤가 6월 1-2일 LG아트센터에서 임선혜와 함께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선보이는 것.
고음악계의 별들이 모여 들려주는 '레퀴엠'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 기대를 모은다.
"현대 오케스트라보다 조금 더 날씬한 편성으로 웅장함과는 다른 결의 카펫을 깔아 보이게 될 것 같아요. 소리의 양으로 승부하지 않아도 그 격이나 깊이를 떨어뜨리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엄청난 집중력을 호소하게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는 이어 다음 달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도 영국을 대표하는 일류 고음악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AAM)'과 함께 선다.
AAM이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면 각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임선혜가 등장해 퍼셀과 헨델이 남긴 계절과 관련한 가곡과 아리아를 부를 예정이다.
이 같은 세계적인 고음악 단체들에서 들어오는 끊임없는 러브콜은 물론 그에게 큰 기쁨이지만, 때로는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명감과 부담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 같습니다. '고음악 전문 가수'라는 인식이 굳어져 다양한 장르의 오페라 무대에 서지 못한다는 안타까움도 있거든요. 하지만 고음악 최고 무대에 서는 거의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제가 느끼는 뿌듯함과 사명감도 큽니다."
그는 오는 11월에도 중요 녹음을 앞두고 있다. '알테 무지크 베를린 아카데미'와 함께 그리스 신화 '오르페오' 이야기를 주제로 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의 솔로 칸타타 모음집을 내놓을 계획. 레이블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고음악 전문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다.
그는 "'아르모니아 문디'는 스타를 낳는 음반사가 아닌 학구적인 성격으로 음악인들의 자존심이라 여겨지는 음반사"라며 "이곳에서 나오게 되는 한국인의 첫 솔로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