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5월은 본격적인 햇차 출하기이다. 이에 맞춰 전남 보성과 경남 하동에선 차 축제가 개최된다.
제39회 보성다향제 녹차대축제는 5월 14~19일 대한다원을 비롯한 보성군내 차밭 일원과 한국차소리문화공원에서 열린다. ‘다신제’, ‘한국 근ㆍ현대 차인전’, ‘한중일 명차 선정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와 함께 찻잎 따기, 햇차 시음, 찻사발 만들기 등 관광객 참여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제18회 하동야생차문화축제는 5월 17~19일 하동군 화개면, 악양면 일대에서 열린다. ‘왕의 녹차! 천 년의 향 세계를 품다’를 주제로 총 46개의 체험, 참여, 문화 행사가 펼쳐진다. 올해는 ‘섬진강 달빛차회’, ‘대한민국 차인(茶人) 한마당’, ‘보은(報恩) 찻자리’가 새롭게 선보인다.
곡우 무렵부터 찻잎 수확
찻잎 수확은 내륙에선 하동이 가장 빠르다. 보성보다 15~20일 정도 앞선다. 지리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섬진강을 따라 봄기운이 올라와 가장 먼저 찻잎을 딴다.
지리산 골짜기 산비탈에서 이슬을 먹고 자란 차나무는 곡우 무렵 새순이 올라오는데, 이를 수확해 만든 최고급 차가 바로 우전(雨前)이다.
“옛날부터 곡우 3~4일 전후에 딴 차를 가장 좋은 차라고 했습니다. 평균기온이 20도 이하일 때 수확한 차가 가장 맛있고, 기온이 그 이상 올라가면 맛이 떨어집니다.” 화개면 최대 야생차밭인 도심다원 오시영 대표의 설명이다.
차나무 새순은 아주 여린 모양새다.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움 하나가 창끝처럼 뾰족하게 올라오고, 그 아래에 작은 잎 1~2개가 기지개를 켠 형태다. 싱그러운 신록의 윤기가 흐르고 아기 살결처럼 부드럽다.
차나무는 뒤로 갈수록 잎 크기가 커지고 맛은 떨어진다. 수확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는데 화개의 경우 곡우 무렵이 우전, 곡우와 입하 사이인 5월 초순은 세작(細雀), 5월 중순은 중작(中雀), 5월 하순은 대작(大雀)이다. 이후 가을까지 따는 찻잎은 티백, 차 추출물 함유 생활용품의 원료가 된다.
불로 익혀 물로 우려내다
차나무는 생명력이 강하다. 대표적인 무재해 식물이다. 병충해가 없으며 가뭄, 장마에도 별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차나무 재배 농가에선 전정(가지치기) 외에 차나무에 손을 댈 일이 없다고 한다.
7대째 차 농사를 짓는 도심다원에서 차 제조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하는데 크게 4단계로 나뉜다. 덖기, 비비기, 건조, 가향 작업이다.
덖기는 차의 품질을 결정짓는 첫 번째 관문이다. 선별한 찻잎을 뜨거운 무쇠솥에 넣고 타지 않을 정도로 볶는다. 가스불에 달궈져 표면 온도가 300~400도에 달하는 솥에 500g 정도의 찻잎을 넣고 빠른 손놀림으로 덖어낸다. 강한 열기로 순식간에 골고루 익혀내야 찻잎 본래의 맑은 색과 향이 살아나온다. 너무 익히면 잎이 누렇게 되고 설익히면 검은빛이 돈다.
덖어낸 찻잎은 키질로 옥석을 가린다. 타버린 찻잎 부스러기나 이물질을 날려 보낸 다음에는 비비는 과정에 들어간다. 멍석이나 광목천 위에 물기가 어느 정도 빠진 찻잎을 올려놓고 두 손으로 국수 반죽 치대듯, 경단 빚듯 가볍게 움키며 굴린다.
건조 작업은 마당과 온돌방에서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통풍이 잘 되는 밖에서 어느 정도 말린 후에 방으로 들이는데, 올해처럼 봄가물이 드는 해에는 찻잎에 수분이 적어 방으로 직행한다. 뜨끈뜨끈한 구들장 위에서 찻잎이 허리를 지지는 시간은 약 2시간이다. 그 이상 시간이 길어지면 발효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는 불발효차(녹차), 반발효차(백차, 우롱차), 완전발효차(홍차), 후발효차(덩이차)로 나뉘는데 우전, 세작, 중작, 대작은 모두 불발효차에 속한다.
가향 작업은 건조가 완료돼 수분이 80% 이상 빠진, 손으로 만지면 부서지는 찻잎을 가지고 한다. 은근한 불로 2~3시간 동안 덖으며 수분을 최대한 빼내어 5% 이하로 만든다.
가향 작업까지 마치면 찻잎의 무게는 확 줄어든다. 수확 시점과 비교하면 우전은 5분의 1, 세작은 6분의 1, 중작과 대작은 7분의 1 정도로 무게가 내려간다. 중작, 대작은 잎이 크고 수분 함량이 높아 줄어드는 양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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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마실 때 가장 귀한 음료
화개 도심다원에서 햇차 한 잔을 시음했다. 우전은 차 문외한도 느낄 수 있는 깊은 풍미를 품고 있었다.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도 미각과 후각을 사로잡는 오묘한 맛이었다. 차나무가 왜 수백 가지 초목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차는 예를 바르게 하고 기운을 맑게 해 치유와 장수를 가져온다고 전해진다. 조선 성종 때 이목 선생이 지은 다부(茶賦)를 보면, 차는 가슴속 울분을 풀어주고 병을 낫게 하는 것은 물론 탐심이 달아나게 한다. 선인들은 차를 마시며 마음을 정돈하고 다스렸는데, 홀로 마시는 차를 가장 귀하게 여겼다.
차의 맛을 결정짓는 것은 찻잎과 물이다. 예부터 좋은 물에 우려야 다신(茶神)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당나라 육우는 다경(茶經)에 ‘산에서 솟아나는 물이 으뜸, 강물이 그 다음, 우물물이 최하’라고 썼다. 물론 이는 중국의 이야기로 우리네와는 딱 맞지 않다. 일반적으로 고여 있는 물보다 흘러내리는 물이, 음지보다 양지에서 나오는 물이 찻물로 좋다.
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ㆍ글/장성배 기자(up@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3 09:4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