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외면하는 '미운 오리 새끼'라도 누군가 따뜻하게 품어준다면 언젠가 멋진 백조가 돼 날아오를 수 있다.
켄 로치 감독의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그런 미운 오리 새끼의 가능성을 믿고 그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내는 따뜻한 영화다.
흔히 '루저'라고 불리는 밑바닥 인생들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로비'(폴 브래니건), '모'(자스민 리긴스), '알버트'(게리 메이틀랜드), '라이노'(윌리엄 루앤)가 그렇다. 폭행죄로 이미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로비'는 또 싸움에 휘말려 중형을 받을 위기에서 가까스로 징역을 면하고 사회봉사 300시간을 명령받는다.
도둑질을 하다가 걸린 '모'와 기차역에서 난동을 피운 '알버트', 취중 공공기물 파손으로 잡혀온 '라이노' 역시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센터에 모인다.
센터에서 이들을 맡아 관리하는 해리(존 헨쇼)는 지각을 하거나 아예 엉뚱한 날짜에 온 이 문제아들을 보며 한숨을 쉬면서도 너른 품으로 받아준다.
로비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친구가 출산하는 날에는 직접 로비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여자친구 오빠들에게 흠씬 두들겨맞은 로비를 집에 데려와 다독여준다.
아무런 희망 없이 밑바닥을 헤매며 살아온 로비는 세상에 태어난 아들을 마주한 순간 이제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한다. 그 와중에 해리의 집에서 처음 맛본 위스키에 흥미를 느끼고 관련 책을 탐독하던 로비는 자신이 위스키의 맛과 향을 감별할 수 있는 예민한 후각을 지녔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느꼈을 때 최고급 위스키를 훔치는 마지막 '한탕'으로 인생의 반전을 꾀한다.
영화는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가난하고 대책 없는 젊은이들이 위스키를 훔치기 위해 벌이는 한바탕 소동극을 그렸다.
켄 로치의 영화라면 무겁고 진지한 영화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날카로운 사회 의식과 비판의 목소리로 필모그래피를 채운 영국의 거장 켄 로치는 이 영화에서 뜻밖의 코미디와 해피엔딩으로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영화는 사회의 밑바닥에 부유하는 청춘의 모습을 우울하게 그리지 않았다.
아빠가 된 뒤 삶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주인공의 진지한 성찰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단순하고 무식해서 귀엽기까지 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알버트가 철길에서 뒤로 넘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해 몸 개그와 백치미의 향연이 이어져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는 경쾌하면서 힘 있는 서사로 긴장을 끌어올리고, 막판의 반전으로 아찔하게 허를 찌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관객을 '앗!'하고 소리지르게 만드는 장면은 이 영화가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운 즐거운 순간이다.
곧이어 마무리되는 훈훈한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결말은 영화 속의 마지막 위스키를 함께 마신 듯 가슴 깊숙한 곳까지 뜨뜻하게 덥힌다.
감독은 이 유쾌한 소동극 속에서 관객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세상에 그대로 내쳐져야 할 청춘은, '루저'는 없다고, 그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기회를 주자고 말이다. 차갑고 혹독한 이 세상에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그 사람이 바로 천사일 수 있다.
영화의 원제 '앤젤스 셰어'는 '천사의 몫'이란 뜻.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목을 오래 음미하게 된다.
이 영화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16일 개봉. 상영시간 101분. 15세 이상 관람가.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07 06:4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