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서 매출 1억 달러 PG홀딩스 일궈…"절실함만큼 성공"
(서귀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잘나가던 대기업 주재원의 특권 의식을 버리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근성과 끈기가 없었다면 지금이 저는 없습니다. 사업은 절실한 만큼 성공하더군요"
말레이시아와 러시아에서 자동차 내장재 제조공장을 설립해 연간 매출 1억 달러를 올리는 PG홀딩스의 박기출(58) 회장은 억대 연봉의 회사원 생활을 과감히 접고, 40대에 독립해 성공한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다.
박 회장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여러 나라를 무대로 글로벌 경영을 펼치는 한상(韓商)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22일부터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연합뉴스·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는 제16차 세계한인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에 참석했다.
월드옥타 수석부회장을 역임한 그는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나를 만든 건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실함과 반드시 이뤄내고 말겠다는 집념"이었다고 소개했다.
"대기업의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한 사람은 누구나 본국으로 돌아갈 때 독립을 고민해요. 쌍용건설 싱가포르 주재원이던 저도 똑같았지요. 1998년 외환위기 때문에 외국계 회사로 옮겼지만 잠시 고민을 유보했을 뿐 결국 2년 뒤 독립했어요. 컴퓨터 부품 제조업에 뛰어들었는데 1년 만에 부도로 무너졌죠. 대기업의 울타리 바깥세상은 혹독한 정글이어서 비싼 수업료를 물었던 것입니다. 투자금을 다 날리며 배운 것은 매정한 사업 현실이었어요."
밑바닥을 경험하고 다시 신발끈을 맸다. 대기업에 근무하던 프라이드도 다 내던지고 철저하게 자세를 낮췄던 것.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의 절박함이 그를 서서히 승부사로 만들고 있었다.
'갑'도 '을'도 아닌 '병'으로 고객과 종업원을 섬기자 사업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자동차 내장재 제조업에 눈을 돌렸다. 첫 주문을 받을 때 무모하리만치 자신 있게 밀어붙였다.
"말레이시아 부품 유통업체로부터 연간 3천 대 분량의 자동차 시트 주문을 받았어요. 설비는 물론이고 직원도 없었지만 덜컥 약속했고, 죽을 힘을 다해 납품 기일을 맞췄어요. 신뢰를 보여준 그때부터 사업이 술술 풀렸답니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에서 기반을 닦은 그는 지난 2011년 현대자동차가 러시아에 진출하면서 협력업체로 선정됐다. 러시아에서 자체 공장을 세우려면 까다로운 규제로 5년은 걸린다. 그래서 박 회장은 임대공장으로 먼저 사업을 시작했고, 3년 만에 자체 공장을 세웠다. 이로써 동남아시아와는 전혀 다른 근로 문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주문자보다 생산자가 '갑'이라는 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미리 숙지하고 시작했습니다. 400명의 직원 가운데 한인은 8명으로, 현지화를 중시하고 존중해준 것이 회사 제2 도약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앞으로는 1∼2명을 빼고는 전부 현지인을 채용할 계획입니다."
박 회장은 국내 대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현지 협력업체보다 동포기업을 활용하면 비용 절감 등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동포사회도 다양해져 현지 사정을 잘 알면서 한국 기업문화에도 정통한 한인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성공한 동포기업들이 모인 월드옥타에 대기업이 좀 더 관심을 두고 협력사업을 펼쳐야 합니다. 대기업과 동포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포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자동차 내장재 분야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박 회장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위해 사업의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인수합병(M&A)과 국내 증시 상장도 고려 중이다.
"물을 거슬러 오르는 배는 멈추는 순간 뒤로 밀려납니다. 제 사업은 지금까지는 워밍업에 불과했죠. 이제부터가 진정한 레이스인 것입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미스터 박' 선장의 'PG홀딩스호'는 돛을 올리고 막 출항한 것입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4/24 18:2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