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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병하 헤니권코퍼레이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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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덕트'로 세계 시장 이름 알려…"자신감 무장하면 무엇이든 거뜬"
(서귀포=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요즘 젊은이들은 모험을 두려워합니다. 자신감도 없어요. 한국인으로서 긍지, 자신이 파는 상품에 대한 긍지, 그리고 자신감으로 무장한다면 무엇이든 팔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22일 제주에서 개막한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권병하(65) 헤니권코퍼레이션 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예비 사회인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느냐고 묻자 '잔소리'부터 쏟아냈다.
요즘 젊은이들은 편하게 자라 쉬운 것만 찾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노회한 사업가의 질책이었다.
권 회장은 말레이시아에서 기업을 이뤄낸 대표적인 한인 사업가로 통한다.
1980년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 말레이시아로 건너간 그는 현지에 처음으로 '시멘트 전봇대'를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1980년대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한국을 떠나 말레이시아로 건너간 이야기부터 30년간의 사업 스토리를 들려줬다.
국내 한 대기업을 다니던 그는 1983년 훌쩍 회사를 그만두고 말레이시아로 건너갔다. 무역을 하던 회사에서 담당하던 지역이 아시아라 말레이시아를 선택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가족과 함께 가기는 망설여졌다고 한다.
가족으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을 약속받았다. 낯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홀로 먹고 자며 '돈 될 게 뭘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고 한다. 백화점 카탈로그를 뒤지며 사업 아이템 찾기에 골몰하기도 했다.
그러다 발길이 닿은 곳은 서울 청계천같이 공구상들이 즐비한 도심 거리.
당시 공구상에서 팔던 산소용접기용 '노즐'이 값비싼 일본산이라는 것을 눈여겨본 그는 가격 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제품을 수입해 팔아보기로 했다.
현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는 운 좋게도 권 회장이 말레이시아에서 사업가로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됐다. 공구 도매상은 권 회장의 제안을 받아 한국에서 가져온 노즐을 사들였고, 여기서 번 돈으로 조그만 사무실을 낼 수 있었다.
시멘트 전봇대 사업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한번은 말레이시아에서 길거리를 가는데 전봇대가 나무로만 만들어져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비가 많이 오면 다시 페인트를 칠해야 했지요. 이곳에서 나무가 아닌 시멘트로 전봇대를 만들어 팔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는 의외의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끌고 갔다. 현지 국영 전력회사를 찾아가 사업 계획을 설명했고, 한국에서는 전봇대를 만들 기술자를 데려왔다.
당시 한국 기업이 말레이시아에 시멘트공장을 세울 때라 전봇대에 쓸 시멘트는 현지에서 어렵지 않게 조달할 수 있었다.
권 회장은 그렇게 말레이시아 거리에 처음으로 시멘트로 만든 전봇대를 세웠다고 했다. 이렇게 번 돈은 더 큰 꿈을 이뤄낼 사업의 밑천으로 활용했다.
권 회장은 시멘트 사업체를 매각한 뒤로 전기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전력공급전달장치인 '부스덕트'가 그의 아이템이었고, 세계 유수업체 제품을 연구해 만든 제품으로 경쟁력을 키워갔다.
'부스덕트'라는 전기장치 하나로 세계 시장에 진출했고, 이제는 제너럴일렉트릭(GE) 등 세계 유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회사를 키워냈다는 게 권 회장의 설명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든 부스덕트의 95%를 전 세계로 수출합니다. GE, 지멘스에 이어 세계 3위 정도 된다고 할까요."
그는 타지에서 어렵게 번 돈을 주머니에 쓸어 넣을 법도 했지만, 기업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말레이시아 사회에 한동안 장학사업으로 보답했다.
말레이시아 한 대학의 한국학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고, 월급 수준이 낮은 현지 경찰 자녀를 위해서는 교육비를 내기도 했다.
권 회장은 회사에 쓸 인재를 뽑을 때 능력이 아닌 품성을 본다고 한다.
능력이야 키우면 되지만 사람 됨됨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사원을 채용할 때 꼭 자기소개를 물어봅니다. 표현력, 설득력도 보지만 그러다 보면 품성을 알 수 있거든요. 구직자가 섬세함을 단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면 섬세함이 무기일 수 있는 회계 같은 일이 맡겨볼 수 있습니다"
권 회장은 한국 정부가 3, 4세대인 차세대 동포 경제인을 키워내 지구촌에서 한민족 경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도록 실질적인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동포 경제인들을 한민족이라는 동질 문화권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전략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한반도를 넘어 세계에서 활동하는 한민족 경제 네트워크는 한국의 국력 성장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직전 회장을 지낸 월드옥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모임 수준의 형식적인 단체가 아니라 경제단체로서 제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는 동포 경제단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4/24 11:16 송고